[허원순의 관점] 바이든의 對中 통상정책 세 가지 관전 포인트
새로 출범할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어떤 모습일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적이고 거침없는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 정책에 긴장해 온 한국에 바이든의 집권은 긍정 요소가 될까. 불리한 요인은 환경·노동 이슈 정도뿐일까. 다자동맹 중시 정책이 점쳐지지만, 여기에도 양면성은 있다.

최근 몇 년간의 기류를 보면 경제·통상전쟁은 전통적 군사·안보 외교와 맞물려 ‘복층·다면의 보호주의’로 변해 왔다. 자국 이익 최우선이라는 본질만 변하지 않았다. 통상·무역 분쟁으로 시작됐지만 금융과 화폐, 기업과 기술로 전선은 확장돼 왔다. 안보 이슈가 강조되면서 제3국 민간 기업에까지 ‘줄서기’가 강요되기도 했다. 화웨이 통신장비의 보안성 문제가 대두되자 한국의 반도체 부품에 대한 압박이 양국에서 동시에 불거졌다. 갈등이 더 치열해지면 자동차 같은 산업으로도 진영 논리의 불똥은 튈 수 있다.

미·중 통상 분쟁과 관련해 앞으로 세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다. 무엇보다 대치·대립 전선을 주도해 온 미국이 유리한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든 중국을 계속 압박할 것이다. ‘공세적 낙관주의’라고 할 만한 상황이다. ‘자유무역·개방’을 내세우며 미국에 맞서 온 중국은 ‘개방론’을 이어가며 대항할 것이다. 양국 간의 관계만 보면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대변인이 된 듯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입장은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국제적 좌표 설정도 어렵고, 자동차·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대외환경도 낙관은 금물이다.

‘바이든 시대’ 韓·美·中의 시각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통상정책을 진단하는 한·미·중 토론회가 제주포럼 기간 중인 지난 7일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맨 오른쪽)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통상정책을 진단하는 한·미·중 토론회가 제주포럼 기간 중인 지난 7일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맨 오른쪽)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특히 통상·무역정책을 조심스럽게 예상해볼 수 있는 국제 토론회가 최근 제주포럼의 한 세션으로 열렸다. 핵심은 여전히 중국과의 관계다. ‘무역전쟁하의 동아시아 가치사슬(GVC: global value chain) 변동과 정부정책’이라는 주제로 미리 기획됐지만, 실제 행사는 지난 7일 오후에 열렸다. 보호주의를 기치로 계속 공세적이었던 미국 쪽에서는 국무부에서 오래 근무한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이 나섰다. 태국 대사, 국무부 정치군사 선임보좌관 등을 지낸 경력을 바탕으로 방위산업체이기도 한 보잉에 합류한 외교통이다. 중국 입장을 대변한 청융화 타이허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지난해까지 외교 일선에서 뛴 노련한 국제통이다. 주한대사를 거쳐 지난해 주일대사에서 물러나기까지 한·일 양국에서 11년간 대사를 지냈고, 지금도 중·일 우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현역이다. 한국 쪽에서는 김태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전문위원(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이 나섰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연구 경력이 있는 류상영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기자도 종합논평 토론자로 동참했다.
[허원순의 관점] 바이든의 對中 통상정책 세 가지 관전 포인트

대립하지만 어느 쪽도 ‘개방·자유무역’ 부정 안 해

세 명의 기조발표자에게 네 가지 사전 질문이 던져졌다. △현재의 GVC는 재편될까, 그렇다면 어떤 방향일까 △미국과 중국은 각각 자국 중심의 GVC를 구축할 수 있을까 △동아시아에서 다자적 협력관계는 어떻게 복원될 수 있을까 △한국은 새로 형성되는 GVC에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을까였다. 주제발표와 질의응답은 향후 바이든 행정부의 통상정책을 예측하고, 미·중 갈등 양상을 내다보는 데 도움이 될 만했다.

외교관에서 ‘관변 기업인’이 된 존 사장의 분석과 전망에서 ‘미국식 낙관주의’가 확인됐다. 결국은 대화로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를 높여줄 만했다. 사실 보잉만 해도 세계적으로 주요한 공급사이면서 고객사이고, 40만 개에서 수백만 개 부품이 들어가는 항공기 제조업체여서 단일 국가가 아니라 여러 국가의 많은 공급업체와 일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는 “코로나로 미국 정부가 어려움에 처해 있고, 중국과의 관계도 악화일로지만 GVC에 대한 중요성이 공유되고 있어 향후 전망은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진로에 대해선 “민주당인 만큼 미·중 관계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다른 관점을 가질 게 확실하다”며 “워싱턴과 베이징이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진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청 수석연구원은 중국 정부 입장을 거의 그대로 전했다. 미리 준비한 발표문뿐 아니라 이어진 토론까지 시종일관 자유무역과 개방의 중요성을 반복했다. 그는 “현재 국제 분업구조는 생산요소와 시장화의 자유로운 상호작용 산물이자 경제적 세계화의 결과물”이라며 “비용과 효율을 최우선시하는 기업들 논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팬데믹 이후의 GVC 재건 또한 시장의 룰을 완전히 벗어날 수도, 벗어나서도 안 된다”고 역설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미국 정통 자유주의 학파 이론가의 연설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미·중 충돌에 대해서도 “중국은 글로벌화를 수호하고 WTO 체제하에 글로벌 무역 발전을 도모할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한국 쪽 기조발제자인 김 전문위원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활용한 한국 자동차업계의 글로벌 전략과 이 과정에서 미·중 충돌 변수를 분석했다. 그는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GVC보다는 글로벌 공급사슬 전략을 취해 오다가 코로나 발발로 문제에 직면했다”며 “수소전기차, 자율주행차 확대에 따른 공급사슬 변동이 있을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수평적 플랫폼 구축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룰과 규범 있는 통상전쟁, 계속될 것”

미·중과 한국 쪽 발표자 모두 ‘글로벌 협력’ ‘포스트 코로나 대비’ ‘모든 국가의 윈-윈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악마는 각론에 있다는 게 문제다. 모든 나라가 자국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추진하느냐가 중요하다.

좌장을 맡은 류 교수의 정리말에 시사점이 있었다. “GVC의 지속, 시장과 기업의 이익이 훼손되지 않는 게 관건이다. 단기적 전투만 이기려 하는 리더십과 전투에는 지더라도 통상전쟁 전체에서 이기려는 리더십이 부딪치는 가운데 룰과 규범이 있는 통상전쟁이 향후에도 벌어질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주도할 미·중 간 대립 혹은 관계 개선도 결국 이런 틀에서 이뤄질 공산이 크다. 연성 통상마찰이든, 무력시위까지 뒤따르는 초강경 통상전쟁이든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응 전략을 짜야 하는 게 한국의 어려운 처지인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 WTO 체제 최대 수혜국의 방어논리
중국의 美 대응전략은…기승전 '개방확대 요구'

“일방적 괴롭힘이 있다. 자국 이익만 우선시하며 정치적 이유로 글로벌 가치사슬(GVC)을 강제로 차단하고 세계를 분열시키는 국가가 있다.” 미국의 대(對)중국 통상 압박에 대한 청융화 타이허연구소 수석연구원의 평가다. 직업 외교관 출신답게 에둘러 표현했지만 메시지는 명확했다. 공개 국제행사(제주포럼)에서 ‘미국의 일방적 중국 때리기’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는 “글로벌 공급망, 국제 금융시스템과 통신인프라 같은 글로벌화된 제품이 어느새 국가 간 협상카드(대상)가 되고 있다”며 어려워진 중국 사정을 호소하기도 했다.

불만도 토로하지만 통상·경제 문제에서 중국의 대미 대응 전략은 늘 ‘기승전, 개방확대·상호협력’이다. 그는 “다자주의냐 일방주의냐, 상생협력이냐 제로섬 게임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기로에서 모든 국가가 상생협력의 개념을 확립하고 더욱 공정하고 포용적인 거버넌스, 더 높은 수준의 개방, 더 깊은 협력을 통해 경제 세계화와 코로나 팬데믹의 충돌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세계무역기구(WTO) 기반의 다자무역 체제를 확고히 유지하며, 글로벌 산업체인과 공급망의 안정성과 원활한 흐름을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론적으로 모두 맞는 말이다. 논리에 일관성도 있다. 언제나 관건은 실천이다.

흥미로운 것은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의 반론 논리 또한 개방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이다. 그는 “미국은 가장 개방된 경제다. 많은 나라가 미국과의 교역을 통해 혜택을 보고 있다”며 “WTO와 개방 경제에 관한 문제에서 ‘레토릭’과 ‘현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중국을 몰아세웠다. 중국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느냐는 비판이다.

이 논박은 일리가 있다. 과거 미국 주도로 구축된 WTO 체제의 자유·공정무역과 경제 개방의 최대 수혜국은 과연 어디인가. 한국도 이런 메가트렌드를 잘 활용한 게 사실이다. 미국도 그 흐름에서 나라 밖의 온갖 상품과 서비스를 값싸게 누려 왔다. 그래도 제1의 수혜국은 중국일 것이다. 청 수석연구원이 “중국은 14억 인구와 4억 명 이상의 중산층을 가진 거대한 시장을 다른 국가들과 기꺼이 공유하고 있다”며 “중국시장의 지속 성장은 거대한 구매력을 형성해 중국 내수 강화뿐 아니라 전 세계에 새로운 시장을 제공할 것”이라고 ‘위협’이 담긴 자랑을 할 수 있는 배경도 그렇다. WTO 체제로 ‘세계의 공장’이 됐고, 그 열매를 누렸기에 고도성장 국가가 된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향해 자유무역과 개방을 일관되게 외치지만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그런 입장을 견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을 향한 ‘사드 보복’ ‘BTS 국제인터뷰에 생트집’ 같은 게 그런 사례다. 중국의 무역 장벽이나 경제 보복은 관세·비(非)관세 구별이 없을 정도로 위협적이다. 이날 토론에서도 중국의 이런 ‘두 모습’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청 수석연구원은 “한·중 협력은 흔들림 없이 진행되고 있고, 마찰과 갈등은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것이며,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한·중 기업 간 대화도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고만 응답했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