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재판 졌다고 법 바꾸겠다는 공정위
“앞으로 경쟁사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 얘기하는 것도 조심해야겠습니다.”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 중 ‘가격, 생산량 등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도 담합으로 추정한다’는 조항에 대한 한 기업인의 반응이다. 경쟁사 직원과 회사와 관련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가 담합으로 형사처벌받을 가능성에 대한 걱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혁신 경쟁을 촉진하겠다”며 정보 교환 행위를 담합으로 추정해 처벌하는 조항을 이번 개정안에 신설했다. 전속고발제 폐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 등과 같은 내용보다 관심은 덜 받고 있지만 법이 통과되면 일반 회사원도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광범위한 규제라는 우려가 나온다.

공정위는 이 조항을 통해 ‘규제 공백’을 없애겠다고 한다. 하지만 ‘규제 그물을 더 촘촘히 해 라면값 담합 사건 때처럼 관련 재판에서 지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기업들은 보고 있다. 대법원은 2015년 12월 농심이 공정위를 상대로 과징금 1080억원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농심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농심이 다른 라면 제조사들과 제품값, 가격 인상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사실은 있지만 명확한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법을 바꿔 이런 경우도 처벌받게 하겠다는 게 공정위의 숨은 의도라는 얘기다.

기업들은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실무 차원에서 경쟁사와 가격 또는 판매 실적 등을 주고받곤 한다.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조차 담합으로 추정하면 실제 담합하지 않았더라도 고발당한다. 기업들은 정보를 교환하기는 했지만, 담합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까지 지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 리스크를 피하려면 모든 직원이 경쟁사 직원과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 게 상책이다. 이게 공정위가 생각하는 혁신 경쟁인지 되묻고 싶다.

공정위는 정보 교환을 통해 실질적으로 경쟁을 제한한 경우에만 제재하겠다고 설명한다. 일상적인 정보 교환은 괜찮다는 말이다. 기업들은 그러나 공정위 말을 그대로 믿긴 어렵다는 반응이다. 라면값 담합 사건에서 공정위가 정보 교환이라고 지목한 내용들은 ‘당신 회사 사장님 취임사 내용이 뭐냐’ ‘지난달 매출은 어느 정도냐’ 등 담합과 거리가 먼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공정위는 해외에선 정보 교환 행위를 훨씬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담합 추정 조항이 있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경제계에선 공정위가 행정편의를 위해 기업을 옭아매는 개정안을 만든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여당은 개정안을 그대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누구를 위한 법 개정인지 따져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