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中 기업 최대 리스크는 '괘씸죄'
안방보험, 완다그룹, 하이난항공, 푸싱그룹은 중국이 해외기업 인수합병(M&A)에 열을 올렸던 2010년대 초반부터 ‘해외 M&A 4대 천황’이라고 불리던 기업들이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미국 뉴욕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 독일 도이체방크 등 서구의 유명 부동산과 은행 및 기업 지분을 쇼핑하듯 사들여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랬던 이들 중 푸싱을 제외한 나머지 세 곳이 2018년 초 한꺼번에 궤멸 직전의 위기로 내몰려 중국 안팎에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안방보험은 창업자 우샤오후이(吳小暉) 전 회장이 경제범죄 혐의로 기소돼 하루아침에 경영권을 국가에 헌납했다. 하이난항공과 완다는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과 해외자산 매각에 돌입했다. 중국 당국이 “자본이 과도하게 빠져나가는 걸 막겠다”며 이들의 ‘돈줄’을 죈 결과였다. 실제로는 혁명원로들의 자녀를 지칭하는 ‘태자당(太子黨)’이 2016년 후반부터 정치세력화를 시도했고, 이에 격분한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들과 연관된 기업들을 때렸다는 게 정설이다.

최근 알리바바의 핀테크 계열사인 앤트그룹의 세계 최대 규모 기업공개가 전격 중단돼 여러모로 2년여 전 이 일을 연상시킨다. 지배주주인 중국 최대 부호 마윈이 “금융당국이 너무 보수적으로 금융회사를 감독하고 있다”고 비판한 지 얼마 안 돼 전격적으로 벌어진 일이란 점에서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마윈은 관련 당국으로부터 주식 시세조종을 통해 태자당에 자금을 대줬다는 의심을 받아온 터다. 능숙한 영어와 입지전적 ‘성공 스토리’로 해외에서도 존경받고 있지만, “괘씸죄에 걸리면 어떤 기업도 무너질 수 있다”(블룸버그)는 중국에서 마윈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남의 나라 얘기로 치부할 일도 아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다가 정권 실세와 관료들의 심기를 거슬러 검찰수사까지 받았던 게 한국이다. 정주영 현대 창업회장, 최종현 SK 선대 회장 같은 굴지의 기업인들이 모두 비슷한 일을 겪었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정권과 기업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크게 바뀐 게 없다. 야당 원내대표 국회연설이 포털 메인에 걸렸다는 이유로 여당 실세 의원이 “(해당 회사 관계자를) 들어오라고 하라”고 윽박지르는 판이다. 기업들은 대관(對官)조직을 키워 읍소하는 길밖에 없다. 중국이야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라 그렇다고 해도, 한국의 기업환경은 왜 이런 수준을 못 벗어날까. 사농공상과 관존민비가 한국인의 DNA에 깊이 각인된 탓인가.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