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영의 데스크 칼럼] 국민은 안중에 없는 통신정책
주파수는 건물을 짓기 위한 땅이나 차가 다니는 도로에 비유된다. 주파수에 음성·데이터를 실어 서비스하는 통신사로선 좋은 주파수를 많이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유한한 국가 자원이다. 주파수 경매 때 통신사들이 ‘쩐의 전쟁’을 벌이는 이유다. 룰을 정하는 정부의 권한은 막강할 수밖에 없다.

주파수 할당은 일반 소비자와는 무관한 그들만의 리그였다. 정부와 통신사 간 분쟁도 별로 없었다. 이번엔 다르다. 내년 6월 사용 기간이 끝나는 2세대(2G)·3G·4G 이동통신 주파수 재사용료 산정을 앞두고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급기야 통신 3사가 공동 건의서를 제출하며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4조원가량의 재사용료를 내야 하는데,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높은 주파수 비용, 투자 걸림돌

논란의 핵심은 정부의 산정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전파법 시행령에는 과거 경매 방식으로 할당한 적이 있다면 이를 반영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근거로 더 높여 받겠다는 것이다. 경매로 진행되는 신규 할당 때는 수요가 몰려 높은 가격에 낙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 사용 중인 주파수라면 당시보다 가치가 떨어졌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해외 주요국들도 재할당 대가는 낮게 산정한다. 그러나 정부는 “주파수 재할당과 신규 할당은 법적 성질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방침을 고수한다.

통신사가 제시한 적정 가격은 실제·예상 매출의 3%를 반영한 1조6000억원 정도다. 하지만 정부가 과거 경매가의 50%를 반영하면 2조8000억원, 100%를 적용하면 4조원대로 불어난다. 통신사들은 “차라리 경매 방식을 도입하자”고 역제안까지 했다. 경쟁을 통해 가격이 오르더라도 제대로 가치를 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논리싸움이 치열하지만 결국 핵심은 돈이다. 과도한 주파수 비용은 통신 소비자들에게도 좋을 게 없다. 준조세 성격의 주파수 비용은 정보통신진흥기금과 방송통신발전기금 재원으로 쓰인다. 차라리 통신사 부담을 줄여 투자 여력을 키우는 게 소비자 편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는 통신사가 막대한 주파수 비용을 내고도 5G 투자 확대와 서비스 품질 개선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투자와 요금 인하를 압박할 다른 수단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통신 소비자 고려한 정책 필요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는 통신 정책은 이뿐만 아니다. 정부는 월 2만원에 음성 200분, 데이터 1기가바이트(GB)를 제공하는 LTE 보편요금제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과도한 시장 개입 우려 등으로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 다시 추진한다지만 이 수준의 요금제에 국민이 만족할까. 논란이 됐던 ‘전국민 2만원 통신비 지원’도 마찬가지다. 통신비를 낮추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실질적 혜택을 주려고 했던 건지 의문이다. 소비자가 스마트폰을 더 싸게 살 권리를 빼앗아간 단말기 유통정책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간 정부의 행보로 볼 때 주파수 재할당도 시장 기대와 동떨어진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명심할 게 있다. 정부가 바라는 5G 성공을 이끌 주체는 통신사라는 점이다. 앞으로 매출이 정체된 상황에서 5G 투자는 늘리고, 비주력 주파수에도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비자 편익이 줄어드는 피해가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는 주파수만 보지 말고 통신산업은 물론 소비자 후생, 5G 생태계까지 종합적으로 살피는 통신정책을 펼쳐야 한다.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