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돕는 감사위원 분리선임
극비사항 핵심기술 탈취당할 수도
상법 개정 통한 기업 파괴 멈춰야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시론] '헤지펀드 보호법안' 당장 폐기해야

감사위원회제도는 1999년 개정상법에서 처음 한국에 도입됐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을 도와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준 국제통화기금(IMF)이 기업지배구조를 미국식으로 개조하라는, 거절할 수 없는 요구에 따른 것이다. 감사위원회는 이사회 내의 보수위원회,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 등과 같은 하나의 위원회에 불과하다. 따라서 위원은 당연히 이사임을 전제로 한다.

감사위원은 이사회에서 선임해야 마땅하지만 한국에서는 별나게도 상장회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도록 해 놓았다. 2009년에 이르러 감사위원 선임은 전체 이사를 선임한 후 선임된 이사 중에서 다시 총회 2차 투표로 선임하도록 상법이 개정됐다. 감사위원이 이사인 만큼 당연히 이렇게 돼야 하는데 그동안은 회사 자율에 맡겼다. 이렇게 개정된 배경에는 2005년 KT&G를 공격한 미국계 헤지펀드 칼 아이칸의 문제 제기와 소송이 일조(一助)했다. 칼 아이칸은 패소했지만 법무부는 그 요구가 타당한 것으로 인정해 상법을 개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사와 감사위원의 분리선임을 강제하는 상법 개정안이 경제민주화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칼 아이칸의 문제 제기로 개정된 현행 상법을 뒤집겠다는 발상이다. 이는 마치 국회의원 선거 후에 법사위원 선거를 따로 또 한 번 하자는 것과 같다. ‘공정’이라는 가짜 프레임으로 소액 주주들에게 무언가 줄 것처럼 현혹하려 들지만, 소액 주주들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없다. 이들이 대기업의 감사위원을 선임할 만한 실력이 있을 턱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이들은 총회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주식 보유 목적이 주주로서의 경영참여에 있지 않고 주가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쁜 것도 아니다. ‘서학개미’가 아마존이나 테슬라의 주주총회에 갈 리가 없지 않나. 발행 주식 총수 4억~5억 주인 대형 회사에 100주, 1000주를 들고 가봤자 의미도 없다. 그래서 총회 성립 자체가 어렵다. 2020년 정기총회 시즌 동안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감사 또는 감사선임 안건은 12월 결산 상장회사 2029개사 중 315개사에서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부결됐다.

결국은 대량의 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 헤지펀드만이 자기 사람을 감사위원에 선임할 수 있다. 감사위원을 분리선임하면 펀드가 상장 중견·중소기업에 감사위원을 한 명 심는 것은 일도 아니다. 대주주는 3%로 의결권이 제한되지만 펀드는 지분을 쪼개면 아무런 제한이 없다.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여당의 양향자 의원은 “소중한 핵심 기술을 빼앗길 우려가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사회는 전략을 확정한다. 어떤 기술을 개발해 어떤 사업에 진출할 것인지, 투자는 어떻게 하고 기술개발 소요 시간, 판매 전략, 기술의 직접 개발 가능성 또는 인수합병(M&A)을 통한 기술 획득 방법 등 모든 것을 테이블에 올린다. 모두가 극비 사항이다. 그런데 펀드가 파견한 인물이 이사회에 출석해 이들 고급 정보를 보고 듣고 승인한다.

나아가 감사위원의 감독 범위는 대표이사를 포함해 전 임직원의 업무에 미친다. ‘감독’한다는 명분이면 사안의 적법성은 물론 타당성도 감사할 수 있다. 기술 자료도 예외가 아니다. 그 자료는 M&A 상대방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 감사위원 한 명이냐 전원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감사 및 감사위원은 독임기관이라 한 명이라도 열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다.

이 법안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헤지펀드에 이 제도를 이용하라는 것이고, 그 펀드를 국가가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다중대표소송, 6개월간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도 주식 취득 후 3일 만에 즉시 임시총회소집, 이사해임요구, 주주제안, 대표소송 등 모든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헤지펀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과연 ‘기업 파괴법’이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다. 이런 법안을 ‘헤지펀드 보호법’이 아닌 무엇이라 부를 수 있나? 당장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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