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우리 사회 폐쇄성·정부규제 돌파해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지난 1일 ‘2020년 세계 디지털 경쟁력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1위와 2위는 변함없이 미국과 싱가포르이고, 우리나라는 지난 3년간 19위, 14위, 10위였다가 올해엔 8위가 됐다. 이런 국제적 비교들의 개념이나 조사방법이 정교하거나 언제나 적절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결과 발표는 우리나라의 시류에 시사하는 바가 큰 듯싶다.

IMD는 지식, 기술, 미래준비도 등 3개 분야 52개 지표를 측정해 국가별 디지털 경쟁력을 평가한다. 한국은 규제 여건(26위)과 자본(25위) 부문이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특히 과학적 연구를 지원하는 법적 환경(31위), 지식재산권(38위), 이민법(39위), 기술 개발 및 적용(44위) 등의 규제 여건과 함께, 기술개발자금 펀딩(38위), 금융서비스(49위), 벤처캐피털(41위), 통신 분야 투자(42위) 등이 매우 초라하다. 자본시장이 과학기술을 산업으로 중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의 부진이 정부의 직간접적인 규제와 시시콜콜한 간섭에 기인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은 정부 제도 및 규제의 후진성과 정부의 경직되고 재량적인 개입이 우리나라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과학기술의 인적 자본 측면에서 세부지표 중 눈에 띄는 것들로는 여성 과학기술연구원의 비중(54위), 국제적 경험(39위), 외국인 고숙련 직원의 수(43위), 국제 학생의 순유입(49위), 교육비 총액(36위) 등이 있다. 우리 사회의 폐쇄성이 고질적인 문제로 드러난다. 양질의 해외 인력과 학생이 유입되지 않으며 한국 여성 연구자들의 입직과 활약도 극도로 부진하다. 디지털 경쟁력의 핵심적 요소 투입이 매우 부실한 것이다.

이런 폐쇄성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외국의 두뇌집단에 우리 사회가 그리 매력 있는 직장이나 거주 및 가족 공간이 되지 못하는 탓일 것이다. 또 육아와 아이들 교육 문제, 사회 전반의 후진적인 조직문화와 근무관행이 여성 고급인력의 참여를 가로막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개방성과 탄력·유연성이 주도하는 글로벌한 과학기술의 혁신환경에서 우리 사회 특유의 폐쇄성과 후진적 관행이 과학기술 인력 구성에 치명적인 결함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세부지표 중에서 신기술 적응도(1위), 기업의 사업역량(3위) 약진이 눈에 띄고, 전자 참여(1위), 인터넷 소매업 매출(1위) 등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민 다수, 소비자와 시민사회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있고 기업도 영민하고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뜻일 게다.

이런 유능한 민간의 요구에 부응한 결과로써 정부의 투입이 높은 평가를 받은 지표들이 있는데 연구개발(R&D) 총액(2위)과 전자정부(2위) 등이다. 민간의 높은 눈높이가 정부의 자원배분과 일하는 방식의 수준을 견인하고 또 높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디지털 경쟁력 수준이 그 나라 혁신의 한 모습이다. 국민과 소비자, 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목과 적극성을 갖고 자기혁신을 하고 있지만,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여차하면 쇼케이스나 테스트베드로 전락할 수 있다. 뿌리 깊은 우리 사회의 폐쇄성이 여성과 외국인을 혁신과정에서 배제하고 있어, 혁신을 위해 사회가 전심전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또 현장의 과학기술 발전이 정부제도의 후진성과 경직성 때문에 과학기술적 성과 내지는 산업적 부가가치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연구는 겉돌고 있고 창업아이디어들은 청년과 함께 시들고 있다. 혁신을 위해, 결국은 생존을 위해 사회 관행과 정부제도의 포용성, 개방성과 유연성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