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폰지, 현대화폐이론 그리고 재정적자
찰스 폰지는 이탈리아 출신의 금융 사기꾼이었다. 폰지는 1920년 미국 보스턴 지역에서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거짓된 투자계획을 앞세워, 당시 기준 약 2000만달러의 투자를 받고 제대로 상환하지 않아 엄청난 손해를 끼친 바 있다. 그래서 그는 금융사기 대명사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폰지의 사기 계획은 그 당시 국제반신권(international reply coupon)이란 국제 우편 반송용 쿠폰 가격이 나라별로 다르기 때문에 차액거래로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 착안, 투자자에게 엄청난 수익률을 보장하는 금융상품을 파는 것이었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90일 이내에 투자액 대비 2배의 이익을 약속했고 처음에는 정말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가 설명했던 국제반신권의 차액거래는 대단한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했고, 투자자에 대한 이익 반환은 다른 투자자들에게서 받은 투자금으로 이뤄졌다. 을에게서 훔쳐 갑에게 갚은 것이다.

이런 방식은 미래에 더 많은 돈을 뀌어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항상 가능하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자본은 유한하고 자본을 뀌어줄 사람은 더욱 제한돼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음 사람이 뀌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면 자신도 뀌어주지 않으려 하고, 이 논리를 확장하면 애초에 이런 방식은 금융시장에서 통용될 수 없다. 물론 자신이 투자하는 대상이 이 방식을 사용하고자 한다는 것을 아는 경우에 말이다.

최근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많은 나라의 정부가 불가피하게 엄청난 액수의 유동성을 사람들에게 지원하고 있다. 그 와중에 ‘현대화폐이론’이라는 신종 경제이론을 주장하는 경제학자와 그를 인용하는 정치인들이 보인다.

현대화폐이론은 이름은 화폐이론이지만 사실상 재정 지출을 무제한 해도 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정부는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므로 기존 부채에 대한 이자만 감당할 수 있다면 계속 화폐를 발행해 국가채무 원금의 상환을 영원히 유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최근 저금리로 인해 부채에 대한 이자가 0에 가까우니 이자 부담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그렇게 발행된 화폐가 계속 가치를 갖고 있는 한은 가능한데, 이는 폰지의 사기 계획이 새로이 돈을 뀌어줄 사람이 있는 한 유효한 것과 동일한 문제다.

금융 거래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 간 대차거래이고 모든 대차거래에서 채무자의 상환 능력이 채권자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다. 민간 채무자는 자신이 앞으로 채무를 성실히 상환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위해 과거 금융거래 이력을 이용하기도 하고 이것으로 충분치 않은 경우 담보 혹은 보증 같은 수단을 쓰기도 한다. 정부는 민간에 비해 돈을 빌릴 수 있는 힘이 크다고 여겨지는데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걷을 권한이 있으므로 이를 담보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능력도 국민이 낼 수 있는 세금의 합에 의해 제한된다.

국가가 화폐 그리고 국채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채무 상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설사 국채를 국내 시장에 어떻게든 유통시킨다고 해도 국제적으로 화폐 가치가 없어진다면 그 돈으로 해외와 교역할 수 없다. 국제 금융시장은 나라의 재정 건전성을 고려해 국채에 투자하고 화폐 가치를 결정하게 된다. 국제 투자자들은 앞으로 무한대로 발행해 가치가 없어질 특정 국가의 화폐를 믿고 돈을 빌려주지는 않는다.

만일 현대화폐이론이 옳다면 우리나라가 1990년대 말 겪은 외환위기를 설명할 수 없다. 당시 민간 부채가 문제의 근원이긴 했지만 만일 국채를 무한정 발행할 수 있었다면 부실화된 민간 부채를 나라가 사들이고 국채를 발행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됐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는 외환보유액도 얼마 되지 않아 신인도가 바닥에 떨어졌고 국제 금융시장은 한국 정부조차 신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수많은 국민이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 위기를 극복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정치인은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기억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