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코로나 토착화'에 대비해야
최근 두 달 사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부쩍 나빠졌다. 확진자가 68%나 증가하고, 사망자도 40%나 늘어났다. 1% 아래로 떨어졌던 월간 치명률도 9월에는 다시 2.3%로 뛰어올랐다. 해외 유입 비율도 13.6%나 된다. 우리 국민의 해외여행은 억제하면서 다른 나라 국민의 입국은 허용하는 외교부의 정책은 명백한 자가당착이다. 원칙이 분명하지 않은 정부의 방역 정책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과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코로나19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확진자 1000만 명이 발생하는 기간이 179일→44일→38일로 줄어들었고, 오는 19일께엔 확진자가 4000만 명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 환경과 바이오 기술이 세계 최고인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전 세계 확진자의 21.6%와 사망자의 20.5%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확진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과학을 외면하고 방역을 너무 일찍 풀었던 탓이다. 인도, 브라질, 러시아도 심각하고 유럽도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

감염병은 절대 낯선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 때문에 감염병이 부쩍 잦아지고, 독성이 더욱 강해졌다는 주장은 황당한 궤변이다. 오히려 인류 역사는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흑사병, 천연두, 소아마비, 홍역, 열병, 독감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감염병으로 제국이 무너지기도 했다.

우리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의 역병 기록이 84회에 이른다. 숙종 25년(1699년)에는 25만 명이 죽었다. 영조 24년(1749년)에는 60만 명이 사망했고, 이듬해에도 44만 명이 희생됐다. 모두 홍역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1 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에도 당시 인구의 1.25%인 20만 명이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었다. 콜레라, 말라리아, 장티푸스와 같은 역병의 피해도 엄청났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애써 반길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극단적인 적대감과 공포를 부추길 이유도 없다. 특히 바이러스가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 변화를 일으킨 인간에게 복수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소설’이다. 멧돼지가 자신들의 서식처를 파괴한 인간에게 보복하기 위해 도심에 출몰한다는 주장만큼이나 엉터리다. 멧돼지 수가 무려 50만 마리로 늘어나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은 서식처 파괴가 아니라 산림녹화와 도시화 탓이다.

바이러스, 박테리아(세균), 기생충에 의한 감염병은 우리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사자, 늑대, 독사와 같은 맹수도 우리를 괴롭힌다. 그렇다고 야생의 맹수를 모두 죽여 없앨 수는 없다. 미생물도 마찬가지다. 감염병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미생물도 자연 생태계의 당당한 구성원이다. 더욱이 모든 미생물이 맹수처럼 우리를 공격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프로바이러스(유익바이러스)도 있고, 프로박테리아(유익균)도 있다.

백신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섣부른 것이다. 백신 개발이 쉬운 일도 아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백신은 천연두, 소아마비, 홍역, 파상풍, 인플루엔자, 수두 등 27종뿐이다. 백신만 만들면 감염병이 종식되는 것도 아니다. 에드워드 제너가 발명한 우두(牛痘)로 천연두 바이러스를 완전히 퇴치하는 데는 무려 184년이 걸렸다.

그렇다고 현대의 첨단 의료·방역 기술이 무의미한 것은 절대 아니다. 감염 사실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진단 키트도 개발했고, 증상에 대한 다양한 대증요법도 갖췄다. 지난 5월 초에 7.2%까지 치솟았던 치명률이 5일 현재 2.96%까지 떨어진 것도 그런 노력의 결과일 수 있다. 물론 바이러스가 자연 선택에 의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완전한 퇴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코로나바이러스의 토착화를 대비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역시 믿을 것은 과학뿐이다. 감염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스크리닝 기술과 더욱 확실한 대증요법을 개발해야 한다. 토착화를 무작정 겁낼 이유는 없다. 독감, 홍역, 수두, 흑사병, 말라리아처럼 조금은 성가시고 부담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