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현대판 '고려공사삼일'
속담에는 촌철살인의 은유가 숨겨져 있다. 민족성이나 시대상, 사회상도 압축돼 있다.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은 “고려의 정책이나 법령이 사흘이면 바뀐다”는 뜻으로, 옛 중국에서 우리를 비꼬던 말이다. 원칙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에 대한 국제적 인식의 반영이어서 씁쓸하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뀐 뒤에는 이 말이 ‘적폐’를 상징하는 의미로 변질됐다. 세종은 평안도절제사에게 봉수대 설치를 명하면서 “고려공사삼일은 과거의 고질”이라며 “예전처럼 축조에 착수만 하고 작업을 태만히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엄명했다.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 류성룡은 각 고을에 공문을 보내고 나서 며칠 뒤 내용이 잘못된 것을 발견했다. 고쳐서 다시 보내려고 회수하라고 했더니 부하가 며칠 전 공문을 그대로 들고 왔다. “왜 여태 안 보냈느냐”고 꾸짖자 “‘조선공사삼일’이라고 으레 고칠 줄 알고 들고 있었다”고 했다. 말문이 막혔다.

류성룡이 임란 때의 실패를 교훈삼아 조령과 죽령에 요새를 설치하고 탄금대에 성을 쌓게 하는 국방 강화조치를 취했다가 탄핵을 받아 조정을 떠나자 이 조치는 없던 일이 됐다. 훗날 탄금대를 지나던 그는 성벽 대신 초가집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탄식했다.

정권이 바뀌면 국책사업이 변질되고, 기관장이 바뀌면 업무 방향이 달라지는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전임자의 성과를 부정하고 자기 업적을 내세우기 위해 무리한 ‘정책 뒤집기’와 무모한 ‘정책 실험’도 강행한다. 사흘은커녕 아침에 변경하고 저녁에 또 고치는 조변석개(朝變夕改)까지 판을 친다.

620여 년 역사의 광화문광장도 정권 따라 다시 파헤쳐지는 수난을 당했다. 임진왜란 이후 복구된 광화문 육조거리는 조선총독부 건물 때문에 도로로 바뀌었다. 광복 이듬해 세종로로 명명된 왕복 16차선 대로는 2000년대 중반 10차로로 축소됐다. 지난해에는 차로를 6개로 더 줄이고 광장을 3.7배 넓히는 계획이 발표됐다.

어제는 광화문광장 규모를 당초 계획보다 절반으로 줄이고, 지하공간 개발을 취소하는 수정안이 공개됐다. 광장 규모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내달 말 공사가 시작될 모양인데 앞으로 다시 파헤쳐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러다가 ‘한국공사삼일’이란 말까지 나오는 건 아닌지 민망해진다. 부동산·세금·교육·의료 분야는 또 어떤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