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인공지능의 역습
최근 인공지능(AI)의 발달이 눈부시다. 인류 원리에 관한 업적으로 유명한 닉 보스트롬에 의하면 2075년까지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초지능이 출현할 것이며, 2100년까지는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이 출현할 것이 확실하다고 한다. 인간의 복합적인 능력과 비교되는 ‘범용 인공지능’의 경우가 그렇다. 자율자동차와 같이 특정 목적만 수행하는 ‘약한 인공지능’의 발전은 이미 경이롭다.

사람의 얼굴 표정, 자세, 심박 수 등을 관찰해 감정 상태를 인식하는 감성 컴퓨팅이 등장한 것이 1990년대 중반이다. 지금은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사람과 기계가 감성적인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는 ‘인공감성지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인공감성지능이 극도로 발달한다면 미래의 어느 저녁은 이렇지 않을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무장한 로봇이 가정마다 있다. 지친 몸으로 퇴근해서 오면 로봇이 알아서 감정을 살펴 기분에 맞는 음악을 틀어주고, 음식을 만들어 주고, 곁들일 와인도 골라주고 하지 않을까. 그야말로 말하지 않아도 로봇이 알아서 척척 해주는 맞춤형 서비스다.

지금도 분야에 따라서는 개인화된 맞춤형 서비스가 이미 이뤄지고 있다. 동영상을 하나 보면 추천 동영상이 줄줄이 뜨고, 기사를 하나 읽으면 당신이 좋아할 다양한 기사가 연이어 뜬다. 인터넷에서 어떤 상품을 하나 검색하고 며칠 지나 뉴스 기사를 읽다 보면 전에 검색한 상품 광고가 기사 중간에 뜨는 사례도 있다. 가끔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매우 편리하기는 하다. 문제는 자기가 익숙한 것이나 자기와 견해가 같은 것들만 계속 접하게 된다는 점이다. SNS나 포털 사이트의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나와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만 친구를 맺고, 그들과 공유가 가능한 정보만 되새김한다. 뉴스도 나와 관점이 같은 뉴스만 접하게 된다. 정보가 넘쳐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생각과 같은 정보만 편식하게 되고, 그 결과 확증편향만 커지게 된다.

사람은 집단을 이뤄 사는데 집단의 생산성은 집단의 다양성에 의존한다. 위대한 도시경제학자인 제인 제이컵스가 수많은 원시 부족을 관찰하고 내린 결론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접촉해 자극을 받아야만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확증편향으로 분절된 사회는 다양성이 없는 사회보다 생산성이 더 낮을 수밖에 없다.

확증편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보를 편식하지 말아야 한다. 말은 쉽지만 다른 견해를 수용하기 위한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다. 사고가 균형 잡힐수록 통찰력은 더 날카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