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시카고거래소의 '봉이 김선달'
“오사카에선 ‘초아이마이아키나(帳合米商)’라고 부르는 장부상 쌀거래권이 통용된다. 거래권을 이용하면 쌀을 실제로 보유하지 않았더라도 마음대로 팔고, 보관할 곳간이 없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20섬에서 시작해 200섬을 거래하고, 1000섬이나 1만 섬 단위로도 손쉽게 사고판다. 매일 수만 명이 거래하고, 시세만 잘 예상하면 눈 깜짝할 새에 떼돈을 번다.”(1748년 간행 《미곡매매출세차도식(米穀賣買出世車圖式)》)

서양에선 16세기 네덜란드 튤립 거품 당시 첫 선물거래가 이뤄졌다고 보지만 일본은 세계 최초로 선물거래가 이뤄진 곳으로 1730년 오사카에 개설된 도지마쌀거래소를 꼽는다. 이곳에선 1731년 2월 쌀 중개권 441주의 발행을 허가한 것을 시작으로 선물거래를 늘려나갔다. 당시 쌀은 수확량이 해마다 다르고, 작황을 예측하기도 힘들어 가격의 등락폭이 컸다. 자연스레 쌀 선물거래에 운을 건 사람들은 빠르게 부를 쌓기도, 한순간 모든 것을 날리기도 했다.

세월이 흐른 19세기 말. 바다 건너 미국의 농축산물 거래 중심지 시카고에선 버터와 달걀 거래를 시작으로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활동을 시작했다. CME는 이후 각종 농산물의 현물거래뿐 아니라 선물거래로 영역을 넓혔다. 현재도 각종 지수와 원자재, 외환 등 다양한 상품의 선물거래뿐 아니라 가축과 육류, 밀, 콩, 버터, 목재, 우유 등 CME의 뿌리에 해당하는 농산물의 선물거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생활에 필요한 모든 상품의 선물이 거래된다는 CME에서 마지막 남은 ‘핵심 자원’인 ‘물 선물’이 등장한다는 소식이다. CME는 나스닥 등과 손잡고 물값 급등락에 따른 위험을 헤지하는 선물을 연내 선보이기로 했다. 물 선물은 캘리포니아주 물 시장의 거래가격을 반영해 작성된다. 농민 제조업체 등 물 수요자에게 물 부족이 초래할 위험을 관리할 수단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그동안 물은 생존과 산업에 필수적인 존재였지만 ‘상품’이라는 인식은 많지 않았다. ‘물 쓰듯 한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물은 공짜라는 잠재의식도 뿌리가 깊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설화는 그런 고정관념을 잘 드러낸다. 하지만 쌀 육류 등과 달리 선물거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던 물도 마침내 거래목록에 오르게 됐다. 물 부족에 따른 자연스런 변화상이 아닌가 싶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