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 칼럼] 헌법 119조 (2)항을 다시 읽다
①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우리 헌법 119조다. 경제 운영의 기본 질서를 제시한 조문이다. ②항은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유명하다. 1987년 개헌 작업에 참여했던 당시 김종인 민주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것으로 알려져 ‘김종인 조항’으로도 불린다. 그 김종인 씨가 보수야당 국민의힘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경제민주화를 재소환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새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 구현을 명시했고, 1호 정책으로 기본소득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정부 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기업 경영권 위협’ 입법인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에 대해 김 위원장도 “내 소신과 같다”며 거들고 있다. 경제민주화에 관한 한 여야 간 손발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정부 역할까지 커지면서 경제민주화에 관해선 토를 다는 사람도 많지 않은 듯하다.

이쯤되면 경제민주화의 근거인 헌법 119조 ②항의 오독(誤讀) 논란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괜히 시비 걸자는 게 아니다. 헌법의 취지와 정신을 정확히 이해해야 정책의 정당성도 확보된다는 뜻에서다. 학계 일각에선 ②항의 ‘경제의 민주화’란 말이 지금 통용되는 것처럼 평등한 경제를 지향하며 소득격차를 해소하고 대기업 규제를 강화하자는 의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좌승희 한국제도경제학회 이사장은 “②항의 문맥상 앞에 나오는 ‘적정한 소득 분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가 이미 격차 해소와 대기업 규제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 뒤에 나오는 ‘경제의 민주화’는 다른 뜻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답은 1987년 개헌 때 국회 헌법개정소위 위원장이었던 현경대 전 민정당 의원이 쓴 공식 헌법 해설서 《신헌법》(박문각, 1988)에 나온다. 여기엔 ‘경제의 민주화’ 의미에 대해 “정부 기업 가계라는 경제주체 가운데 종전에는 정부 주도 경제 운영에 치우쳤으나 민간 주도로 전환하여 실효성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라고 쓰여 있다. 관치에서 탈피한 경제 운영의 민주화란 얘기다. 당시 정치민주화에 따른 권력 분산과 민간의 자율 확대 분위기를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런 취지의 경제민주화가 지금처럼 잘못 읽히기 시작한 건 2012년 대선 때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영입한 김종인 씨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입안한다면서 119조 ②항을 원용했다. 독일에서 공부한 김 위원장은 원래 시장경제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경제력 집중을 막아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다. 1987년 개헌 때도 김 위원장은 ②항에 대기업을 규제하자는 취지로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산업민주화란 표현을 쓰자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토론 끝에 최종 개헌안엔 경제 운영의 민주화란 취지로 ‘경제의 민주화’ 문구를 삽입했다는 게 현 전 의원의 증언이다.

김 위원장 소신이라는 경제민주화 정책의 근거가 헌법에 없다는 건 아니다. 119조 ②항에 담긴 ‘균형있는 국민경제 성장’ ‘적정한 소득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등이 근거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②항에는 경제민주화뿐 아니라 경제 운영의 민주화 정신도 함께 녹아 있다는 점이다. 119조 ①항에서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강조한 것의 연장선이다. 이걸 무시하고 정부 역할과 기업 규제만 고집하는 건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헌법에 충실하게 경제를 운영하고 있는가. 정부가 너무 비대해지고 국가주의가 만연하는 것은 아닌가. 코로나 방역을 빌미로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뉴딜 펀드, 공공 의대, 공공 배달 앱 등에서 보듯 공공(公共) 만능주의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닌가. 거대 여당의 무소불위 독주에 민간은 그저 숨죽이고 있지 않은가. 119조 ②항에 담긴 ‘경제의 민주화’ 참뜻을 되새겨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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