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판사 출신 秋장관의 '피해자 코스프레'
“군에서 통역병 선발 방식을 제비뽑기로 바꿔 제 아들을 떨어뜨렸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통역병 선발 과정에서 아들이 불이익을 당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실력으로만 놓고 보면 자신의 아들이 뽑히는 게 당연한데 면접이 아니라 제비뽑기로 선발 방식을 바꿔 탈락시켰다는 얘기다.

추 장관 아들의 통역병 청탁 의혹을 제기한 이모 중령은 당시 선발 방식을 바꾼 것은 여러 군데서 청탁이 들어와 추후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모 중령의 제보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제비뽑기는 철저하게 운에 따라 좌우되는 ‘복불복’ 방식이다. 통역병 후보들의 실력도 상대적이어서 추 장관이 자신의 아들이 당연히 선발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정상적인 답변이라면 “제비뽑기로 바꿔 제 아들이 떨어졌다”가 맞다. 그런데도 이같이 말한 것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통해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편이나 보좌관이 국방부에 전화했는지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도 “주말부부여서 남편이 했는지 물어볼 형편이 안 됐다”든가 “확인하고 싶지 않다”는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수차례 의혹이 제기된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 사실 확인조차 없이 대정부 질문에 나섰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남편에게 물어보는데 무슨 ‘형편’이 필요하냐는 지적도 있다.

추 장관은 이날 억울하다는 입장과 함께 여러 차례 ‘일하는 엄마’의 고충을 강조했다. 아들의 입대·제대날 함께하지 못했고, 휴가 청원을 넣을 때도 도와줄 수 없어 아들 혼자 했다고 호소했다. 답변 중간중간 울먹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심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추 장관의 이 같은 언행은 ‘판사’ 출신으로서의 직업적 특성이 왜곡돼서 드러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판사 앞에서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추 장관이 이번 대정부질문에서 보인 태도가 이와 비슷했다는 지적이다. 스스로 힘이 없는 ‘을’, 억울한 의혹 제기로 마녀사냥당한 ‘피해자’라는 걸 강조했다는 것이다. 한 대학 심리학 교수는 “추 장관의 발언에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 것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간주하면서 법리상 문제가 될 듯한 답변은 비켜가는 가운데 생긴 오류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15일 ‘형편이 안 된다’는 추 장관을 향해 “여보, 추 장관님 댁에 전화기 한 대 놔드려야겠어요”라며 유명 광고 문구를 빌린 글을 SNS에 남겼다. 김 의원의 글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은 이유를 추 장관이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