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日 스가, 아베 아바타로 보면 안돼
14일 일본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는 자신의 비전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충실한 계승을 주무기로 내세워 선거에서 승리했다. 여기에 관방장관으로 8년 가까이 아베 총리를 보좌한 이미지까지 더해져 한국에서는 ‘아베의 꼭두각시’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하지만 도쿄특파원으로 현지에서 지켜본 스가 신임 총재는 은근히 자기 색깔이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선거 토론회에서의 발언과 언론 인터뷰를 뜯어보면 그에게선 세 가지의 특질이 발견된다.

디테일에 강하고 판을 잘 읽어

먼저 디테일에 강하다. 외교 경력이 일천하다는 비판에 대해 “아베 총리 임기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37차례 전화회담이 있었는데 동석하지 않은 건 한 차례뿐”이라고 반박하는 식이다. 중소기업의 낮은 생산성을 지적하며 중소기업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논리 전개에서 보여준 디테일도 돋보이는 부문이다. 관방장관을 7년8개월 동안 하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기자회견에 단련된 덕분이라고도 하지만 원래 성격 자체가 꼼꼼하고 치밀하다는 게 그를 개인적으로 아는 인사들의 증언이다.

판을 잘 읽는 현장밀착형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는 “이동통신 상위 3사가 국민의 재산인 전파의 90%를 과점해 세계적으로 높은 요금을 유지하면서 약 20%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다”며 휴대폰 요금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희망사항을 잘 파악할 뿐 아니라 이를 관철시키는 데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과점하고 있다’며 국민의 힘을 빌림으로써 기업의 반박을 봉쇄했다. 후생노동성을 후생성(복지정책)과 노동성(노동정책)으로 분리하겠다는 의향도 밝혔다. 후생노동성은 ‘PCR(유전자) 검사 수를 늘리라’는 아베 총리의 반복된 지시를 숱하게 뭉갰던 부처다.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그는 부처를 틀어쥘 수 있는 조직의 혈을 훤히 읽고 있는 느낌을 준다.

팬케이크를 좋아해 ‘팬케이크 아저씨’란 별명이 붙었지만 그런 인자한 이미지와 달리 집요한 관리자이기도 하다. 휴대폰 요금 인하는 총무상이었던 2006년부터 손댄 정책이다. 총재 선거에서는 ‘부처 이기주의(칸막이) 타파’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워 관료들을 긴장시켰다. 이 또한 2018년부터 관심을 가졌던 사안이다. ‘한 번 손 봐야겠다고 결정하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파는 스타일’이라는 게 그와 함께 일한 관료들의 평가다.

관방장관 시절 그는 롤모델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시대 통일을 뒤에서 묵묵히 지원한 이복동생 도요토미 히데나가를 꼽았다. ‘아베 1강’으로 불렸던 강력한 보스 밑에서 자신의 색깔을 감춘 채 때를 기다렸다는 점에서 이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더 어울리게 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폭주를 인내로 버틴 끝에 에도막부 260년을 연 인물이다.

'아베 대타'로 만족하지 않을 듯

일본 정계에서는 스가를 아베 총리의 남은 임기인 내년 9월 말까지 자민당을 이끌 ‘임시 대타’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총재 선거 승리가 확실해진 지난주부터 중의원 해산 및 조기 총선설을 피워올려 판을 바꾸려는 걸 보면 그는 대타 역할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스가는 이날 압도적인 표 차이로 총재에 당선된 직후 “아베 총리의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조기 총선 카드로 장기 집권 기반을 마련하면 7년8개월간 집권하며 일본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안긴 ‘아베 시대’와의 단절에 나설 공산이 크다. 한·일 관계를 정상화할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