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근의 데스크 칼럼] 강남 공룡에 소 몇마리 던져준들?
부동산 전문가들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게 있다. 서울 시내 재건축 규제를 서둘러 완화하라는 것이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해야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제안이 전혀 먹히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정부 사람들의 생각이 뼛속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강남 집값이 급등했던 노무현 정부 때도 재건축 규제 완화 여부가 심각하게 논의됐다. 2005년 8·31 대책을 마련하면서 공급 대책에 재건축 규제 완화를 포함할지를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결론은 반대로 재건축 규제를 더 강화하는 쪽으로 났다. 규제 완화 여부를 검토했다는 언론 보도 자체를 부인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듬해 3·30 대책에서 재건축을 올스톱시킨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도입했다.

수요 관리 집착하는 속사정

이런 결론을 낸 이유는 노무현 정부 국정브리핑을 단행본으로 묶은 《대한민국 부동산 40년》이란 책에 자세히 나온다. 우선 정치 논리가 한몫했다. 강남만 더 좋아지도록 둘 수 없다는 정서가 강했다. 지방 균형 발전을 얘기하면서 수도권 균형은 왜 얘기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왜 낙후한 강북은 놔두고 강남만 더 좋게 만드느냐는 논리다. 용적률 상향에 따른 개발 이익을 강남 집주인이 독점하도록 놔둘 수 없다는 주장도 많았다. 규제 완화에 따른 단기적인 집값 상승 부작용을 인내할 용기도 없었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 정도 공급 대책으로는 강남 집값을 잡을 수 없다고 봤다. 당시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은 “강남 공룡에 소 몇 마리 던져준 들”이란 표현을 썼다. 그는 강남을 공룡에 비유했다. 공룡에 소 몇 마리 던져준다고 배가 차겠냐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도 강남은 전국구란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전국에서 밀려드는 수요를 재건축 규제 완화만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재건축 규제 강도는 더 심해졌다. 대출을 끼고 사는 것을 금지하더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세를 끼고 사는 것까지 막았다. 노무현 정부 때 정책을 담당했던 이들이 이 정부에서 정책을 만들고 있어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실무자(주택정책과장)가 현재 재건축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박선호 국토부 차관이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시 국무총리였다.

공급 부족 문제만 키울 뿐

《대한민국 부동산 40년》이란 책의 결론은 이렇다. “개발 이익 사유화를 막고, 분양가상한제 등을 통해 지나친 가격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면 향후 재건축을 신규 주택 공급 원천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정부 들어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공공재건축을 통한 5만 가구 공급 등의 정책이 순차적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공재건축을 하겠다는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용적률 상향 조정에 따른 이익의 90%를 환수하겠다고 하는데 받아들일 단지가 있겠는가.

차라리 이명박 정부 정책에서 배워보는 건 어떨까. 이명박 정부는 세곡동 자곡동 등 강남 턱밑에 반값 아파트를 왕창 공급하겠다고 나섰다. 보금자리주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리면서 주택시장 장기 침체를 야기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강남 집값만큼은 확실히 잡았다. 이 덕분에 박근혜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풀어 공급에 나설 수 있었다. 강남 집값도 집값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1000달러 시대에 지은 집에서 계속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슬럼화 문제는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문제를 키우면서 공룡 타령만 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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