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정년연장 vs 정년폐지
‘장수(長壽) 리스크’라는 말은 이제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다. 수명은 늘어나는데 준비가 부족한 것은 많은 현대 국가의 큰 숙제다. 미래대비·노년준비가 언제는 충분했으랴만, 전통적 가족제도의 변화 등으로 위기를 느끼는 이들이 급증했다. ‘고령인구 대책’ ‘노후문제’ 같은 아젠다는 너무 보편화돼 백가쟁명을 넘어 중구난방 지경이 됐다.

하지만 사공 많은 배 산으로 가고, 잘 집 많은 나그네 저녁 굶는 법이다. 당위론은 넘치지만 현실은 만만찮다. 더구나 고령자에 쏠리는 복지와 일자리 문제로 가면 ‘세대착취’ ‘세대 간 일자리 전쟁’ 같은 무서운 말까지 뒤따른다.

인류가 장수시대라는 미증유의 경험을 시작하면서 정년(停年)이 시대의 키워드로 부각됐다. 공무원 정년을 65세로 올리자는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도 그래서 관심거리다. 공무원연금 지급시기가 늦춰져 60세 정년 이후 소득절벽에 부딪친다는 게 큰 이유다. 정년 직후부터 연금받기까지의 ‘소득 크레바스’ 시기로 보면 쥐꼬리만 한 국민연금에 기대는 일반 국민이 훨씬 더 절박할 것이다. 억하심정의 서민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정년 문제를 ‘연장’ 쪽만 보면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독일이 65세에서 67세로의 정년연장을 2029년까지 장기과제로 삼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초고령사회를 앞서 겪고 있는 일본이 70세로 늘리기로 하면서 임금피크제 같은 보완책들을 병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년제도가 없는 미국과 영국에서 고령의 ‘현역’이 많은 것을 보면, 획일적 정년제도가 능력 있는 고령자를 억지로 퇴장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사르코지 정권 시절 프랑스에선 정년연장에 반대하는 총파업과 폭력시위까지 벌어진 것을 봐도 ‘정답’은 없다. 당시 프랑스 근로자들은 “늙어서도 일해야 하냐”며 반대했는데, 사실은 정년연장과 한 묶음이던 퇴직연금 수령 연기에 반발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성큼 들어선 고령사회, 고령층에게 일할 기회야말로 최고 복지일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의 일자리는 빤하다. 정년연장만을 해법으로 전제하면 대안 찾기는커녕 세대 갈등만 키울 것이다. 코로나 쇼크 와중에 공공부문 먼저 연장했다가 무슨 역풍을 만날지 모른다.

대선 공약인 직무급제를 비롯해 성과급제, 임금피크제 등 논의해야 할 과제도 한둘이 아니다. 65세인 노인 기준이나 연금수령 연령까지 감안하면 난제는 더 많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와 연결시켜 경제활동인구 확보 차원에서 본다면 정년연장보다 정년제도를 아예 없애는 게 근본 해법 아닐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