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전문가를 푸대접하는 사회
정부와 의사들이 드러내놓고 볼썽사나운 ‘맞짱’을 뜨고 있다. 상대의 무조건적 백기투항을 요구하지만, 정작 자신은 한 치의 양보도 할 뜻이 없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급격한 재확산에 떨고 있는 국민은 안중에 없다. 양측이 모두 그렇다. 권위만 고집하면서 법에 따라 처벌도 불사하겠다는 정부 행태는 권위주의 시대의 망령이다. 국민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오해를 받는 의사들의 현실도 안타깝다.

이번 사달은 온전하게 보건복지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의료계와 협의하지 않은 설익은 의료 개혁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내용도 문제지만, 시기가 최악이었다. 코로나19 방역에 전력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에 개혁안을 억지로 밀어붙일 이유가 없었다. 의사들이 복지부의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복지부가 보여준 행정 능력은 실망스러웠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의 전문성은 기대할 수 없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계속된 ‘공식 망언’들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다. 방역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노력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방호복·마스크나 욕심내는 허접한 집단으로 매도해버렸다. 집단 휴진에 참여한 전공의를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허겁지겁 고발해버린 작태도 놀랍다.

지난 6월 초 복지부가 내놓은 질병관리본부 승격안도 낙제점 수준이다. 대통령의 지시로 승격은 시켜주겠지만, 인력·예산은 못 주겠다는 복지부 안은 소가 봐도 웃을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전문성은 없으면서 감염병 관련 연구기관은 자신들이 직접 관리하겠다는 부끄러운 속내도 감추지 않았다. 의사들에 대한 복지부의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일이었다. 결국 보건복지부의 승격안은 대통령의 전면 재검토 지시로 폐기되고 말았다.

의사들의 반발은 복지부에 대한 누적된 불신과 불만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 수련 단계인 전공의와 전문의가 반발의 주역이다. 의대생도 가담하고 있다. 단순히 의사들이 제 몫을 더 챙기겠다는 이기적인 시도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반발의 수위도 만만치 않다. 가운을 벗는 수준이 아니다. 전공의·전문의가 사표를 던지고, 의대생이 의사 국가고시를 포기하고 있다. 아예 의사의 길을 포기해버리겠다는 뜻이다. 젊은 의사들의 적극적인 반발에 의대 교수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에 대한 푸대접은 의사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과학계는 일찌감치 국정에 대한 기대를 접은 상태다. 정권 출범과 함께 시작된 과학기술계 인사는 경악할 만했다. 장관·차관·혁신본부장·과학기술보좌관 등 요직에 모두 깜짝 코드 인사가 발탁됐다. 과학기술계 기관장 11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세계 최고 연구기관인 미국 버클리연구소와 함께 연구비 횡령을 공모했다는 어처구니없는 혐의로 신성철 KAIST 총장을 고발하는 일도 있었다. 다행히 1년10개월 만에 검찰의 불기소로 마무리됐지만, 우리 과학기술계의 명예는 완전히 땅에 떨어진 뒤였다. 유전자 가위 분야 세계적 석학인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박사도 재판을 받고 있다.

느닷없는 ‘탈핵국가’ 선언으로 시작된 탈원전도 상상 못 한 충격이었다. 맨땅에서 시작해서 60년 만에 세계적인 원전 기술을 완성했다는 자부심은 의미가 없었다. 전국 대학의 원자력공학과는 문을 닫아야 하는 형편이고, 창원의 원전 부품산업도 무너지고 있다.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의 기반인 에너지산업은 정체불명의 신재생 마피아들에게 넘어가 버렸다.

방역 전문가들의 처지도 안타깝다. ‘RT-PCR’이라는 유전자 검사 키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바이오 벤처들의 공로는 긴급 사용승인을 내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넘어가 버렸다. 바이오·IT 벤처들이 만들어놓은 ‘진단’과 ‘추적’에 의한 K방역 성공도 정부의 ‘민주주의’와 ‘투명성’의 결과라고 한다. 방역 전문가들의 입국 차단과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요구 또한 정치·경제 논리에 밀려나 버렸다. 전문가를 푸대접하는 사회에서는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