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세난과 실업 사태에 더해 서민 대출의 연체가 급증하는 등 경제적 약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저소득·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정부보증 대출인 햇살론17의 연체율이 지난달 은행별로 최고 17%까지 뛰었다. 일반 가계대출 연체율(6월 말 기준 0.25%)의 수십 배에 달한다. 소득이 줄거나 일자리를 잃어 대출 이자도 못 갚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지난달 실업자는 113만8000명으로 21년 만에 최악이었다. 구직활동도 않고 ‘그냥 쉰다’는 사람이 232만 명으로 역대 최대다. 경제 주름살의 골이 이렇게 깊어진 가운데 무주택자들은 전셋집마저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와 임대차보호법 강화로 전세 매물의 씨가 말라서다.

전세난, 취업난, 대출연체난 등의 공통점은 가장 취약한 계층이 피해대상이란 점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런 어려움의 대부분이 소위 ‘약자 보호’를 명분 삼은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무주택의 설움을 달래준다며 강행한 전·월세상한제와 임대차기간 연장 등 임차인 보호정책이 전세 공급을 줄여 오히려 세입자를 어렵게 하는 역효과로 나타난 게 대표적이다. 최악의 실업 사태도 지난 3년간 추진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같은 약자 지원정책과 무관치 않다. 이런 정책 헛발질이 쌓여 경기침체를 가속화했고, 서민들을 고통의 수렁으로 밀어넣은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민심이 들끓지만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 책임자 교체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홍 부총리에게 “경제사령탑으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격려까지 했다. 여당은 부작용이 뻔한 약자 보호 정책을 더 확대할 움직임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법정 최고금리를 현행 연 24%에서 연 10%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여당 의원이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면 저(低)신용 서민은 제도권 금융에서 아예 불법 사채시장으로 밀려날 수 있는 부작용은 무시되고 있다.

정부·여당이 진심으로 약자를 위한다면 가장 주력해야 할 것이 경제활성화다. 경제가 성장해야 나눌 과실이 커지고 서민도 보호받는다. 경제성장률이 높을수록 소득격차 등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확인된 바다. 진정 ‘서민을 위한 정부’라면 정책의 부작용을 깊이 헤아리고, 어떻게 경제를 더 성장시킬까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민을 위한다는 말 자체의 진정성부터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