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자유 홍콩'의 비극
홍콩 하면 쇼핑, 음식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자유’도 빼놓을 수 없다. 40~50대 이상에게는 ‘자유 홍콩’ ‘홍콩 자유항’이라는 표현이 입에 붙어 있을 정도다. 통신·표현의 자유도 철저한 덕분에 세계 대부분 국가가 홍콩에 정보요원을 상주시키고 있다. 리스본(포르투갈) 카사블랑카(모로코)와 함께 ‘세계 3대 스파이 도시’로 불리는 이유다.

‘자유의 관문항’ 홍콩이 벼랑 끝이다. 지난달 1일 이른바 홍콩보안법이 발동하면서다. 거리에서 ‘자유 홍콩’을 외치던 시위대가 자취를 감췄다. 민주 인사들이 하나둘 사라지더니 ‘우산혁명 주역’ 아그네스 차우도 체포됐다. 하루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그제는 언론사 사주 지미 라이가 ‘외세와 결탁해 보안법을 위반’했다며 전격 체포됐다. ‘언론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언론’(토머스 제퍼슨)이라는 말처럼 언론 없는 민주주의는 허구라는 점에서 ‘자유 홍콩’의 사망을 대변하는 사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내달 말 만료되는 입법회(의회)의 임기를 1년 이상 연장키로 전격 결정했다. 코로나 확산을 핑계로 친중파가 다수인 입법회를 유지하려는 의도다. 민주주의 기본절차인 투표권마저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처사다.

1984년 홍콩 반환협정이 트로이 목마가 됐다. 영국은 2년여 협상 끝에 1997년 7월 1일부로 반환하는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당시 영국은 신계지역만 돌려주면 됐지만 ‘홍콩은 홍콩인이 통치한다’는 ‘항인치항’ 약속에 홍콩 섬과 구룡반도도 모두 반환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공동선언 20년 만인 2017년 “협정은 역사가 됐다”며 ‘영·중 공동선언’을 사실상 부정하더니 힘이 커지자 ‘고도의 자치’와 ‘일국양제’마저 전면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약할 때는 악수를 청하고 강해지면 힘으로 제압’하는 마오쩌둥식 ‘통일전선’ 전략의 원용이다. 덩샤오핑과 협상한 당사자는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였다. 자유시장경제를 부활시킨 주역인 대처마저 중국 공산당을 믿은 장제스의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다.

민낯이 드러난 건 한국 386집권세력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제국주의라고 비판해온 미국조차 홍콩의 자유 박탈을 비난하는데도 일언반구 말이 없다. “홍콩에도 한국처럼 자유와 민주가 이뤄지는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홍콩 우산혁명 상징인 조슈아 웡의 《언프리 스피치》 한국판 서문에 적혀 있는 글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