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진의 데스크 칼럼] 내집 마련 사다리 끊은 정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40대 김씨는 전세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가슴을 졸이는 세입자다. 10년 전세살이 동안 집 없는 서러움도 많이 당했다. 쑥쑥 커가는 아이 데리고 번듯하게 외식 한번 못했다. 그렇게 모았지만 전세 낀 집밖에 살 수 없었다. 김씨는 앞으로 4~5년 더 저축해 전세보증금을 내줄 돈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때는 온 가족이 꿈에 그리던 내집에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집 마련기다. 정도와 방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부모님 세대도 이랬고, 자식 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집을 사는 건 언제나 쉽지 않은 일생일대의 일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에서는 김씨가 ‘내집 마련’을 한 게 아니다. 전세를 끼고 샀기 때문에 갭투자를 한 것이다. 가족이 머물 집을 사는 걸 왜 투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갭투자는 투기의 사촌뻘 정도로 간주된다. 정부가 갭투자 방지 대책을 쏟아낸 이유다.

전세 낀 집 사면 갭투자라니

그럼 내집 마련을 할 때 전세 안 낀 집을 사라는 이야기인데, 김씨도 왜 그러고 싶지 않았겠나.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돈이 모자란다. 집은 마트에서 라면이나 생수 사듯이 척척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갭투자자로 몰리지 않기 위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을 해보면 어떨까. 전·월세 사는 사람들이 보유한 가장 큰 자산은 대개 보증금이다. 이 밑천에 저축과 대출을 더해 집을 산다. 그러나 ‘6·17 대책’은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에서 3억원 이상 아파트를 구입할 때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게 막았다.

정리하면 ‘전·월세 사는 사람은 전세보증금을 그냥 놔두고 전세 안 낀 집을 사라’는 얘기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정도 능력이 된다면 애초 전·월세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정부 출범 이후 웬만한 서울 집값은 두 배 넘게 올랐다. “전·월세 사는 사람은 평생 집 사지 말라는 거냐”는 분통이 터진 이유다.

무주택자들은 이번 정부의 20번 넘는 부동산 대책을 내심 지지해왔을 것이다. 이들이 집값 급등에 절망한 것은 계속 전·월세를 살거나 임대주택으로 밀려나고 싶어서가 아니다. ‘집값이 더는 안 올라야 언젠가 나도 집을 살 수 있을 텐데’라는 조바심과 불안이 컸다. 정부는 세입자들도 내집을 갖고 싶어하는 ‘대기 매수자’라는 사실을 정말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외면한 것일까. 너무도 쉽게 내집 마련 사다리를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집값이 오르면 정부가 다 가져가는 임대 많이 지을 테니 안심하라고 한다.

전세자금 규제는 권력 횡포

전세자금대출은 전세보증금, 즉 현금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이다. 그 보증금은 아마 허리띠를 졸라매고, 내야 할 세금 다 내면서 모은 돈일 것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이라는 대의를 내세웠지만 전세보증금까지 활용할 수 없도록 막은 것은 권력의 횡포다. 전·월세 상한제 등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전세 소멸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는데, 전세 만기가 돌아오면 보증금 들고 길바닥에 나와 집을 사라는 말인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끝에는 반지하에 사는 장남 기우가 돈을 벌어 호화 저택을 구매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상상이다. 기우의 현실은 눈발 날리는 차가운 반지하 창문이다. 봉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기우가 임금을 꼬박 모아 그 집을 사려면 547년이 걸린다”고 했다. 지금 이 장면을 보면 남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할 무주택자가 적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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