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압박에도 '마이웨이'
'중국 표준 2035' 계획 마련
國進民退에 떠는 민간기업"

강동균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거꾸로가는 中 국유기업 개혁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가 7월 대형 민간 투자회사 밍톈그룹이 소유한 주요 금융계열사의 경영권을 전격적으로 박탈했다. 보험·증권·신탁업종의 밍톈그룹 9개 금융회사 경영권은 조만간 국유기업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회사 대부분이 상장기업이어서 시장은 크게 술렁였다. 이들 회사의 자산 총액은 1조2000억위안(약 206조원)에 달한다.

당국은 이번 조치의 이유로 “이들 회사가 실제 소유주의 지분 정보를 은폐하는 등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고객과 투자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 공익을 위해 경영권을 빼앗았다는 설명이다. 샤오젠화 밍톈그룹 회장이 뇌물 제공과 불법 대출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것도 강조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국유기업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이번 조치를 단행했다고 보고 있다. 앞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수장을 맡고 있는 중국 공산당 중앙전면개혁심화위원회는 지난 6월 말 회의를 열어 중국 경제에서 국유기업의 역할을 한층 강화하는 내용의 3개년 계획을 마련했다.

[특파원 칼럼] 거꾸로가는 中 국유기업 개혁

시 주석은 “앞으로 3년은 국유기업 개혁에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며 “국유기업에 대한 당의 총체적인 지도력을 강화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이념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국유기업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중요한 물질적, 정치적 기반이자 당의 통치와 국가 부흥을 위한 핵심 축과 힘”이라고 역설했다.

이 같은 결정은 미·중 무역협상에서 미국이 줄기차게 요구한 ‘중국제조 2025’ 폐기와 국유기업 지원 중단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책인 중국제조 2025는 미·중 무역전쟁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분야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첨단산업에서 글로벌 강국 대열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 주도로 각종 보조금과 혜택을 쏟아붓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국제사회는 중국제조 2025가 불공정 경쟁에 해당한다며 이를 폐기할 것을 촉구해왔다.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자 중국은 중국제조 2025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해왔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세계 각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틈을 타 중국제조 2025를 뛰어넘는 국가 주도 산업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중국 정부가 조만간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등 차세대 기술의 국제 표준을 장악하기 위한 ‘중국 표준 2035’를 내놓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계획의 핵심은 대규모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중국형 기술 표준을 제정한 뒤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활용해 세계에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국유기업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 분야의 선두 주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 만큼 중국은 국유기업을 적극 동원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유기업 개혁이 후퇴하면서 중국 민간기업들은 또다시 ‘국진민퇴(國進民退)’ 공포에 휩싸였다. 국진민퇴는 민간기업은 역할을 다 했으니 이제 물러나고 국유기업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중국에선 올 들어 46개 민간기업의 최대주주가 국유 자본으로 바뀌었다. 지난 2년 동안 국유화된 민간기업 수(50개)에 육박하는 수치다.

일각에선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경기 침체 속에 국유기업이 민간기업의 ‘구세주’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장에선 잠시 주춤했던 국진민퇴 현상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오히려 속도를 내고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에서 국진민퇴 논란은 2018년 9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전격적으로 ‘1년 뒤 은퇴하겠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마 회장의 갑작스러운 퇴진 선언을 놓고 중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많았다.

중국 정부가 겉으로는 국유기업을 개혁해 경제 체질을 바꾸겠다고 공언해왔지만 실제로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갈수록 중국에서 민간기업과 외국기업이 설 자리가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中 국유기업 자산 수익률 0.7%에 불과
중국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산하에 약 13만 개의 국유기업이 있다. 이 중 중국석유천연가스그룹(CNPC), 차이나모바일 등 97개 핵심 국유기업은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가 직접 관할한다. 금융 부문을 제외한 국유기업의 자산 총액은 2018년 말 기준 210조위안에 달한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국유기업의 경영 효율성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국유기업은 총 1조5000억위안(약 257조원)의 순이익을 올렸는데 자산 수익률은 0.7%에 불과했다. 중국 정부는 민간 자본과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혼합 소유제 개혁’을 통해 국유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이 대책은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올 들어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국유기업에 대한 당의 통제를 한층 강화했다. 국유기업 내 당 조직 결성을 의무화했고 경영과 관련한 결정과 핵심 간부 인사를 할 때 당 조직의 심사를 거치도록 규정했다.

량중탕 상하이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2013년 내놓은 청사진에서 제시한 것처럼 국유기업의 진정한 개혁은 시장 지향적이어야 한다”며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과 코로나 여파로 방향이 반대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kdg@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