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친구 요한 하인리히 티슈바인이 이탈리아 여행 중인 괴테의 모습을 그린 ‘캄파냐의 괴테’.
괴테의 친구 요한 하인리히 티슈바인이 이탈리아 여행 중인 괴테의 모습을 그린 ‘캄파냐의 괴테’.
유럽 사람들은 은행나무를 18세기 초에 처음 보았다. 원산지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래된 은행나무의 후손이었다. 한 독일인 의사가 일본에서 근무하다 귀국할 때 종자를 갖고 갔다.

[고두현의 문화살롱] 시인 괴테는 뛰어난 생물·광물학자였다
독일 시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은행나무에 무척 매료됐다. 괴테는 정원에 심어둔 나무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생육 과정을 일일이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부채 모양의 잎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다. 나무가 어릴 땐 부채꼴의 절개선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선명해져 두 개의 잎처럼 보이는 데 주목했다.

그는 1815년 가을, 연인에게 쓴 편지 속의 ‘은행나무 잎’이라는 시에 은행잎 두 장을 붙여 보냈다. 시 첫머리를 ‘동방에서 건너와 내 정원에 뿌리내린/ 이 나뭇잎엔/ 비밀스런 의미가 담겨 있어/ 그 뜻을 아는 사람을 기쁘게 한다오’라고 시작한 그는 ‘둘로 나누어진 이 잎은/ 본래 한 몸인가?/ 아니면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를/ 우리가 하나로 알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호기심을 자극했다.
[고두현의 문화살롱] 시인 괴테는 뛰어난 생물·광물학자였다
그런 다음 자신의 속마음을 전했다. ‘이런 의문에 답을 찾다/ 비로소 참뜻을 알게 되었으니/ 그대 내 노래에서 느끼지 않는가./ 내가 하나이며 또 둘인 것을.’

둘로 갈라진 은행잎에서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의 합일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그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암수 딴 그루인 은행나무의 수태 과정을 ‘둘로 나누어진 한 몸’의 의미와 접목한 감성도 남다르다.

그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도 유명하지만, 1만2000행으로 이뤄진 장시 《파우스트》 등 많은 명시를 남긴 시성(詩聖)이다. 그의 시적 감수성은 어릴 때부터 심취한 책과 폭넓은 생물·광물학적 지식에서 싹텄다.

그의 생물학적 업적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그는 수많은 식물의 뿌리와 줄기, 잎, 꽃이 변하는 모양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스케치했다. 요즘 컴퓨터로 확대해야 보이는 미세한 잎맥까지 그렸다.
‘괴테 식물(Goethe plant)’로 불리는 칼랑코에(왼쪽)와 괴테의 이름을 딴 광물 침철석(goethite).
‘괴테 식물(Goethe plant)’로 불리는 칼랑코에(왼쪽)와 괴테의 이름을 딴 광물 침철석(goethite).
《식물변형론》이라는 책에서는 식물 잎의 변화를 세분화하고, 꽃을 이루는 기관은 잎이 변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밝혔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그의 이름을 딴 ‘괴테 식물(Goethe plant)’이 등장했다.

그는 광물·지질학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이름을 딴 광물까지 있을 정도다. 1806년 독일에서 발견된 침철석(針鐵石)의 명칭이 ‘괴타이트(goethite)’다. 그가 독일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모은 수석만 6500여 점에 이른다.

그의 관심은 동물해부학까지 미쳤다. 포유동물의 해부도 중 ‘개의 두골’ 그림은 정면과 측면을 입체적으로 그린 것이다. 이를 합쳐 보면 현대과학에서나 볼 수 있는 3차원 구조와 같다.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담은 과학서적이 14권이나 된다.

그는 이런 인문·과학 정신을 시로 융합해냈다. 그러면서 “다들 과학이 시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시대가 바뀌면 두 분야가 더 높은 차원에서 친구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시와 과학을 접목한 그의 사상은 근세 서양철학과 음악, 미술의 자양분이 됐다. 헤겔과 쇼펜하우어 등 사상가와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 음악가, 세잔, 모네 같은 화가들도 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일생을 통해 ‘시는 모든 과학의 어머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의 가르침은 현대 문명사에도 새로운 상상력을 꽃피게 해줬다. 그러고 보니 시야말로 과학기술이라는 새 생명을 창조하는 잉태의 과정이다.

괴테는 독일을 대표하는 대문호이면서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 나라를 이끈 국가경영자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시는 ‘과학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경영의 어머니’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롯데그룹 창업자 신격호 회장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여주인공 샤를롯데의 애칭을 따서 기업명을 짓고 서울 롯데월드타워에 괴테 동상까지 세운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테슬라도 괴테 시에서 '교류 발전' 영감 얻어

20세기의 천재적인 전기공학자로 불리는 니콜라 테슬라는 괴테의 시를 암송하다가 자기장과 교류 발전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어느 날 퇴근길에 공원을 거닐던 그는 《파우스트》의 한 구절인 ‘날개가 있어 밤을 따라갈 수만 있다면’을 읊조리다가 번개 같은 영감을 얻었다. ‘그래, 태양처럼 전류를 먼 곳까지 보낼 수 있는 교류 발전기를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까다롭고 정교하기로 유명한 《파우스트》를 거의 통째로 암송할 수 있었던 것도 놀랍지만, 여기에서 ‘전기 혁명’의 번뜩이는 착상을 떠올렸다니 더욱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그의 이름이 전기자동차와 우주산업 분야에서 신기원을 열어가고 있는 일론 머스크의 회사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니…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