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 칼럼] 집값을 기재부에 맡겼더라면…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간 부동산 정책은 국토교통부가 주물렀다. 실세 정치인 김현미 장관이 있었으니 당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종합부동산세 강화 등 집값 추가 대책을 내각에 지시하기 위해 부른 사람도 김 장관이었다. 세금은 엄연히 기획재정부 소관이지만 번지수도 무시했다. 김 장관이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부동산 대책을 논의하던 그 시간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대한민국 동행세일’ 행사에서 쇼호스트로 나서 티셔츠를 팔고 있었다.

정부가 22차례나 세금 강화, 대출 금지 등 규제 폭탄을 부동산 시장에 퍼붓고도 집값 잡기에 실패한 건 국토부가 정책 주도권을 쥐고 있던 것과 무관치 않다. 원래 부동산 정책 중 세제와 대출규제 등 수요 관리는 기재부, 주택 공급은 국토부가 담당한다. 흥미로운 건 부동산 정책 수립 때 기재부와 국토부는 서로 상대방 정책수단을 쓰자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공급 확대를 통한 수급 조절, 국토부는 세제와 대출규제를 통한 투기 억제를 강조하는 식이다. 아마 ‘집값 오른 건 내 책임이 아니다’는 관료적 면피주의가 작용한 탓이 아닐까 싶다.

최근까지도 국토부는 줄기차게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며 다주택자 등 투기꾼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기재부는 적절한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는 수급안정론을 폈다. 이런 경우 청와대는 대개 국토부 손을 들어준다. 집값 급등으로 이반한 민심을 돌리려면 공공의 적이 필요한데 투기꾼을 탓하는 국토부 논리가 더 매력적이어서다.

노무현 정부 때도 똑같았다. 부동산 대책 회의 때마다 당시 건설교통부는 세제와 대출 등 규제 강화, 재정경제부는 공급 확대를 주장했다. 빈민운동가 출신으로 부동산 정책 실세였던 김수현 청와대 비서관(문재인 정부의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물론 건교부 편에 섰다. 시장주의 정책을 선호하는 재경부 관료들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도 작용했다. 노무현 정부 때 주택세금 폭탄의 원조인 종합부동산세와 대출규제 신무기인 총부채상환비율(DTI)이 도입된 배경이다.

그 결과는 모두가 경험한 바와 같다. 노무현 정부 5년간 전국 평균 집값은 23.9%, 서울 강남 아파트값은 64.2%나 올랐다. 세금과 대출규제만으론 집값이 안 잡히자 임기 후반부에 위례신도시 등 공급 확대책을 내놨지만 집값은 천장을 뚫은 뒤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말에 “부동산 말고는 꿀릴 게 없다”며 부동산 정책 실패를 자인했다.

집값 앙등의 주범을 투기꾼만으로 보는 건 편협한 분석이다. 주택도 상품인 만큼 가격이 오르는 건 공급보다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초저금리에 시중 유동성이 3000조원을 넘다 보니 좋은 동네의 새집을 사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급증한 수요에 부응할 만큼 빠르게 주택을 공급할 수 없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가격이 뛰는 것도 필연적이다.

“공급은 충분하다”는 국토부 말의 맹점도 여기 있다. 국토부는 100%가 넘는 전국 주택보급률을 들어 집이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공급된 주택의 질적 요소다. 소득수준이 높아진 데다 시중에 돈마저 풍부하니 더 살기 좋은 곳의 새 아파트를 찾는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가구 수 대비 주택 수만 따지는 양적 공급으로는 충족이 안 되는 수요다.

집값 안정을 위한 전문가들의 조언은 거의 일치한다. 수요가 있는 곳에 앞으로 주택 공급을 확실히 늘린다는 신호를 시장에 주면서 가수요를 잡는 것이다. 공급 확대와 수요 억제를 동시에 구사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게 시장친화적이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 이런 수요·공급의 정책조합은 국토부가 하기 어렵다. 그나마 시장을 이해하고 정책조정 경험이 많은 수석 경제부처인 기재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부가 뒤늦게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야단법석이다. “진작 그랬더라면…”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집값 대책을 기재부에 믿고 맡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청와대가 ‘부동산 정치’를 포기해야 가능한 일이지만…. 이래저래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잔혹사 데자뷔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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