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칼럼] 산업단지에 AI를 더하라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가정생활을 예로 든다. 사물인터넷(IoT)이 상용화되면 냉장고가 식재료 구입 시기를 자동으로 알려준다는 식이다. 인공지능(AI)도 마찬가지다. ‘내일 날씨 알려줘’라고 말하면 휴대폰이 알아서 답한다고 해서 인공지능비서라고 부른다.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겠지만 사실 신기술은 사회적 편익이 더 큰 곳에 먼저 적용돼야 옳다. 화재가 날 조짐이 있으면 공장에 설치된 IoT가 알아서 경고해주고, AI가 알아서 방화셔터를 내려주는 것이 훨씬 유익하지 않겠나.

AI나 빅데이터 논의도 그래서 좀 더 큰 그림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전국 산업단지에 어떻게 AI를 적용할 것인가. 국내 산업단지는 국가산업단지 47개를 비롯해 1220개가 넘는다. 총면적 14억2800만㎡에 10만4000여 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고용인원은 220만 명에 이른다. 수출경제와 고도성장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과거’ ‘구식’ 제조산업으로서 경쟁력이 날로 추락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정 전문지식과 노하우 집약처

산업단지 부흥의 희망은 아이러니컬하게도 AI에 있다. 사실 AI의 핵심은 데이터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의미 있는’ 데이터다. 이 의미 있는 데이터를 갖고 새로운 생산 방식이나 품질혁신 소프트웨어를 짜는 알고리즘 기술이 바로 AI다. 산업단지야말로 ‘의미 있는’ 데이터와 특정 분야 전문지식, 노하우가 가장 많이 축적돼 있는 곳이다. AI가 더해지면 날개를 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독일의 사례를 보자. 1990년대 인터넷 시대에 미국에 밀렸던 독일은 21세기 들어 제조 경쟁력을 기반으로 역전을 시도한다. 가정용 전자기기 등 분야에서 갖고 있는 독보적인 제조 경쟁력을 기반으로 데이터 분석·예측 시장까지 장악하겠다는 드라이브를 걸었다. 독일 ‘산업 4.0’의 골자다.(알렉 로스 《미래 산업 보고서》)

산업단지에 입주한 각 업체가 이제껏 의미 없이 흘려보낸 데이터를 다시 분석하고, 거기서 의미 있는 데이터들로 새로운 생산 방식을 만들어나갈 때 각 기업과 산업단지 경쟁력은 크게 개선될 수 있다. 특정 분야 전문지식은 데이터 분석과 결합될 때 놀라운 힘을 낸다. 알렉 로스는 AI와 센서기술을 이용해 매초 200종의 정보를 측정해 목초 상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소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먹인 뉴질랜드 목장을 예로 들었다. 이 기술을 적용한 지 1년 만에 뉴질랜드 소고기의 중국 수출은 478% 늘었다.

'의미있는' 데이터…성장 계기로

빅데이터와 AI 분야는 결국 과거 활동에서부터 축적된 데이터가 핵심이다. 특히 제조업 경쟁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해온 우리나라로서는 그 전문지식과 경험, 노하우 자체가 거대한 자산이다. 이제까지 이런 전문지식은 회사 내에서만 전수됐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후배가 배우지 않을 경우 그냥 날아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바로 AI가 해결하는 것이다. AI를 통해 이런 전문지식과 노하우 등을 특정한 지능 소프트웨어로 만들 수 있다면 제조업체의 시장가치도 크게 개선된다.

산업단지 전체를 AI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AI를 주도할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먼저다. 머신러닝과 알고리즘 등을 잘 아는 전문 인재도 길러야 하고 학습데이터를 입력하는 인력도 필요하다. 각 단지 내에 AI 전문 기업을 입주시키거나 특화기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단지는 어쩌면 우리가 캐내야 할 데이터의 ‘보고’일 수 있다.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 제조업 경쟁력의 비밀이 AI로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