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통화량이 가파르게 늘고, 집값을 자극할 수 있는 단기유동자금은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저축성 예금과 금융상품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통화량(M2)은 지난 5월 중 3053조9000억원으로 전달보다 35조4000억원 늘었다. 월간 증가액으로 1986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다. 현금과 수시입출식 예금에 한정한 좁은 의미의 통화량(M1)도 1035조원으로 1년 전보다 19.3% 늘어났다. M2에서 M1이 차지하는 비중은 33.9%로 2005년 9월(34.0%) 후 가장 높았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단기부동자금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최근 집값 급등 배경으로 불어난 시중자금을 빼놓을 수 없다. 부동자금이 생산적인 투자로 흐를 수 있는 통로가 막혀 있다 보니 주택시장으로 돈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경직된 노동시장과 각종 규제에 발목 잡힌 기업의 투자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복병을 만나 더욱 움츠러들었다. 의료 관광 등 유망 내수부문 투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돈을 가진 개인 입장에서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렵다. 증시 아니면 부동산이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잉 유동성을 해소하려는 거시적 안목 없이 세금과 대출 규제만으로는 뛰는 집값을 잡는 데 한계가 있다.

집값 안정을 위해서라도 시중자금이 흐를 수 있는 다양한 투자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를 위한 몇 가지 시도가 있었으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진전이 없는 게 현실이다. 기획재정부가 지주회사 체제인 대기업도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이달 중 내놓겠다고 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대에 막혀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CVC를 허용하면 대기업 총수의 ‘사익편취’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시적으로 무기명채권 발행을 허용하자는 주장이 여당 일각에서 제기됐지만 ‘부자 배불리기’라는 반대에 부딪혔다.

최대 현안인 집값 안정을 위해 시중 유동성의 부동산 쏠림을 막는 게 필요하다면 정부·여당도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대기업이나 부자가 돈 버는 꼴은 못 보겠다는 식의 ‘배아픔 프레임’부터 버려야 한다. 말로만 미증유의 위기라고 할 게 아니라 대기업의 CVC든, 무기명채권이든 전향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처럼 개인이 국채에 투자하면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줘 예금보다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방안도 있다. 과잉 유동성 해소대책이 곧 집값 안정책이자 투자활성화 대책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