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서민을 더욱 서민답게
요즘 식자(識者)들이 모이면 “정권이 진짜 20년 갈 것 같다”고들 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0년 집권’ 발언이 괜한 천기누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당은 존재감 상실, 유력 대선잠룡은 여당 일색, 담론의 장(場)은 좌파 독무대인 데다 재난지원금 같은 도깨비방망이까지 쥐고 있어서다. “대통령 열 분 더 당선시켜야 한다”던 이 대표 바람처럼 50년까지는 몰라도 20년은 너끈할 것이란 얘기다.

아무리 그래도 경제가 엉망인데 정권이 지속될까. 빌 클린턴처럼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가 선거 철칙 아닌가. 이 역시 뭘 모르는 소리라고 한다. 소득 격차가 벌어지고 경기가 나빠질수록 좌파 성향 정당에 유리했던 사례가 훨씬 더 많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가 연이은 정책 실패와 경제 추락에도 잘못 꿴 정책들을 고수하는 이유를 감 잡을 수 있다. 지난 3년간 최저임금 과속이 자영업자를 초토화시키고, 주 52시간제가 중소기업을 울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청년을 좌절케 하고, 친(親)노동 정책이 경영자를 무력화하고, 탈(脫)원전이 잘나가던 산업 생태계를 파괴했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이들이 민노총, 전교조처럼 ‘조직된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값 폭등이 정권에 충격을 주지 않을까. 20대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고, 30~40대는 ‘영끌 패닉바잉’ 하고, 전세 난민이 속출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세금 폭탄과 규제 타깃이 부자인 한, ‘부동산 정치’는 여전히 남는 장사다. 다수의 ‘배아픔’을 자극할 재개발·재건축을 정부가 한사코 외면하는 이유다.

물론 여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의 잇단 미투 사태가 악재이긴 하다. 그러나 결정적 변수가 못 된다. 오히려 ‘권력의 법칙’에 충실할수록 지지층 결집 효과가 강화된다. 조국 사태, 윤미향 사태도 그렇게 넘기지 않았나. ‘개헌 빼고 다 할 수 있다’는 거대여당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에다 소위 ‘개혁입법’을 밀어붙이면 퍼즐이 거의 완성되는 셈이다.

집권세력의 자신감은 권력의 본질에 관한 몇몇 분석에 비춰 봐도 나름 근거가 있다. 먼저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미국 뉴욕대 석좌교수는 권력의 목표는 ‘탁월한 통치’가 아니라 ‘장기간 통치’이며, 필요한 것은 오직 충성뿐이라고 갈파했다. 측근을 최소로 유지하되 대체 가능한 집단을 넓혀 긴장케 하고, 돈줄을 쥐고 지지자를 (충성을 유지할 정도로만) 보상하며, 국민은 굶겨도 지지자 지갑은 털지 않는 게 독재자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대중의 지지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민주국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그의 관찰이다(《독재자의 핸드북》).

또 하나는 ‘컬리 효과’다. 20세기 전반 보스턴시장을 지낸 민주당 소속 제임스 컬리는 철저한 편 가르기와 경제 폭망에 힘입어(?) 4연임했다. 부자들이 떠나고 중산층이 무너질수록 그의 지지도가 더 올랐기 때문이다. ‘부활한 마키아벨리’라는 로버트 그린은 《권력의 법칙》에서 노골적으로 권력의 본질을 들춰냈다. 적은 노력으로 최대 권력을 얻으려면 숭배와 추종을 창출하고, 이미지와 상징을 앞세우고, 모호하고 단순하게 표현하고, 자비·의리가 아니라 이익에 호소하고, 사람들이 의존하게 만들고, 상대를 허상과 싸우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권력의 본질에 비춰 보면 여당의 20년 집권 가능성은 몽상이 아니다.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고, 공정·정의·포용·평화 같은 근사한 언어를 독점하고, 대국민 감동 이벤트를 늘리는 게 다 효과가 있다. 조세소득형 국민이 1000만 명을 넘고, 이들이 정권과 공동운명체가 된다면 권력은 더 공고해질 것이다. ‘국민만 보고 간다’는 다짐은 지지자만 보겠다는 말이고, 국익보다 정권 이익이 우선인 게 정치 권력의 속성이다.

일부 식자는 코로나 충격 장기화로 증폭될 경제 위기가 정권에 최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런 ‘진실의 순간’은 안 올 가능성이 더 크다. 경제가 나쁘면 코로나 탓이고, 좋아지면 정부·여당 덕이니 꽃놀이패 아닌가. 세계의 대전환기에 서서히 끓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살아가게 될 것 같다. 어쩌겠나. 유권자가 선택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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