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佛, 재택근무로 도심경제 흔들…日, 업무개선 활용
글로벌·디지털로 무장한 20~30대는 만족도 높아

각국 사무실 임대료 하락 등 도시 空洞化 우려
세계 어디서든 근무하는 '원격 이민자' 늘어날 듯
정착까진 시간 필요…노동 유연성 제고가 관건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오춘호의 인사이트] 마지못해 도입한 재택근무…생산성 향상이 성패 가른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주 금요일 공무원을 비롯한 근로자들이 재택근무에서 멀어질 때라며 다시 일터로 복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난 3월 재택근무를 권장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양새다.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영국 언론들은 존슨 총리가 영국민에게 좌절과 혼란을 심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존슨 총리가 이렇게 태도를 바꾼 건 재택근무로 인해 사무실이 집결돼 있는 런던 중심가의 많은 상점이 고객을 받지 못해서다. 영국 쇼핑가는 수개월째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 출퇴근 직장인에게 간편한 식사를 제공하는 샌드위치 체인점 프레타망제는 하루 판매량이 정상 수준의 25%에 불과하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근로자들이 재택근무를 정상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며 재택근무에서 복귀할 것을 간접적으로 요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재택근무 필요성을 강조하고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한 것과 엇박자가 나는 모습이다.
獨 재택근무법에 재계 ‘발끈’
독일 역시 재택근무와 관련해 혼선을 빚고 있다. 후베르투스 하일 독일 노동부 장관은 근로자가 원하면 재택근무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을 올해 말쯤 제출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독일 재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잉고 크라머 독일경영자협회(BDA) 회장은 재택근무를 의무화하면 기업들은 회계와 물류 등 많은 부문에서 아웃소싱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정치가나 노동조합 모두 이런 법안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춘호의 인사이트] 마지못해 도입한 재택근무…생산성 향상이 성패 가른다

일본은 정부와 기업 모두 재택근무를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혼선을 빚는 유럽 국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 위기 이전부터 업무 방식 개선을 하나의 정책 아젠다로 제시해 왔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기회로 보고 적극 추진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회사에 나오는 인력을 70% 줄이도록 요구했으며 재택근무 추진단도 조직했다. 그동안 호응하지 않던 기업들은 서서히 재택근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 업체 히타치가 지난주 업무 방식을 개선해 재택근무를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하면서 일본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이 회사는 산업전기와 중전기 정보기술(IT) 인프라 등 중후장대한 제품을 주로 생산해 온 종합전자 업체다. 일본 전통의 기업 관행이 가장 깊게 뿌리박힌 곳이기도 하다. 일본 언론에선 이를 ‘히타치 쇼크’라고 부른다. 중후장대한 히타치가 움직이면 대부분 기업이 외면하기 어렵다. 후지쓰와 니혼덴산 등 일본의 대표 제조업체도 재택근무에 뛰어들고 있다. 일본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디지털 지체 국가로 낙인이 찍힐까 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재택근무는 산업 변화와 함께 부침을 여러 번 겪었다. 1993년 전체 직원의 40%를 원격근무 형태로 바꿨던 IBM은 2017년 원격근무를 아예 없애고 사무실 체제로 전환하기도 했다. IBM뿐만 아니다. 야후 등 수많은 기업이 재택근무 체제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재택근무를 일찌감치 도입한 일본도 그동안 큰 진전은 보이지 못했다. ‘도장문화’라고 할 만큼 수직적인 조직 관행에서 어느 누구도 재택근무를 반기지 않았다. 보안문제가 컸고 재택근무로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줌 문화’ 유행에 보안문제도 해결
[오춘호의 인사이트] 마지못해 도입한 재택근무…생산성 향상이 성패 가른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줌 문화’라고 할 만큼 원격디지털 기술이 발전했고 보안문제도 많이 해결됐다. 수십 명이 모여 화상회의와 세미나를 할 수 있는 터전도 마련됐다. 이제는 오히려 재택근무가 업무 효율을 끌어올리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경영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 나가모리 시게노부 니혼덴산 회장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 업무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재택근무를 도입했다”며 “기대 이상으로 성과를 올리는 직원이 나오고 있다. 눈이 갑자기 확 트인 느낌이다. 조직 문화 개선과 인사평가도 그에 맞춰 바꿨다”고 밝혔다.

이제 재택근무는 디지털 기술로 업무를 전환시키는 디지털 전환(트랜스포메이션) 그 자체다. 미국의 IT 공룡들과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재택근무를 주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세계적으로 재택근무를 이끌어가는 세대는 20~30대다.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다. 한국에서도 이 세대들이 가장 재택근무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재택근무로 인한 생산성 개선효과도 뚜렷하지 않지만 서서히 나오고 있다. 미국 오스틴지역 조사에서 재택근무 응답자의 52%가 생산성이 개선됐다고 답했다. 일본에선 종이 결재 등을 하지 않고 온라인 결재를 실시해 업무 프로세스가 많이 개선됐다는 보고도 있다.

일본 후지쓰는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 국내 그룹 회사를 포함한 사무실 공간을 2023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페이스북도 5~10년간 전 사원 5만 명의 절반가량을 재택근무로 바꾸겠다고 했다. 신규 지사도 대도시 밖에 설립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게임룸과 무료 식당을 갖춘 세련된 사무실에서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해 왔던 IT 기업들이다.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이 같은 모델은 점차 퇴색해 가고 있다. 덩달아 유럽과 미국의 사무실 임대료는 낮아진다. 도심이 시들어가고 도심 지가도 떨어진다.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 도시를 발달시킨 백화점 같은 유통업체들은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져 부도 공포를 앓고 있다. 나카가와 마사유키 니혼대 교수는 “여러 기능을 집적하는 것으로 생산성을 올린 ‘도시’에 대해 많은 사람이 회의적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인재 글로벌 경쟁 치열해져
기업들은 한 걸음 나아가 글로벌 경쟁을 고민하고 있다. 재택근무 시대엔 어느 곳에서든 인재를 뽑아 쓸 수 있다. 이른바 ‘디지털 글로벌’ 세상이다. 원격 이민(telemigration)을 주장해온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볼드윈은 최근 복스에 기고한 글에서 코로나19는 유럽과 미국의 노동자들이 원격근무를 배움으로써 원격 이민이 시작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시대엔 구직자들이 세계 각국의 지원자와 경쟁해야 하지만 고용자 측면에서도 우수한 인재를 얻기 위해 국내외 기업들과 다툴 수밖에 없다. 저임금 국가에 근무하는 근로자를 고용해 훨씬 적은 비용으로 원격 업무를 수행할 수도 있다.

당장 일본에서는 지방에서 재택근무할 수 있는 인재를 구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도쿄와 비슷한 급여를 주더라도 지역에 우수한 인재를 모으겠다는 것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기술적 장벽이 낮아진 상태다. 어느 나라에서든 재택근무가 용이한 상황이다.
한국 재택근무 안착 성과 불투명
IT전문가 등 전문직과 마케팅 지원업무 등 재택근무가 가능한 업종이 많은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은 서비스업이 발달한 나라다. 한국과 일본 등 제조업 중심 국가들은 재택근무할 수 있는 업종이 제한적이다. 지난 6월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이 직장에서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비율이 가장 낮았다.

한국은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시작했지만 5월 초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네이버 카카오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해제된 상태다. 코로나 방역 모범국가로 대외 활동에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그게 오히려 재택근무 등을 포함한 업무 방식 개선과 디지털 글로벌화의 유연성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의 노동 관행과 업무 관행으로 글로벌하게 재편되는 재택근무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없다는 얘기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육아를 위해 일을 포기하는 여성이 줄어들 수 있다. 이를 잘 활용하면 여성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고 국내총생산(GDP) 증가를 유도할 수 있다. 물론 현재로선 재택근무하는 기업과 하지 않는 기업을 평가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하지만 업무와 노동 방식의 근본적인 변혁기가 다가오고 있다. 재택근무와 같은 노동 유연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생산성 향상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환경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1만弗 지급·주택 임차료 지원…재택근무자 유치나선 美 툴사
새 도시 성장모델로 주목

툴사는 미국 중남부 오클라호마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한때 유전이 발견돼 급성장한 이 도시가 지금 이색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곳에서 재택근무하는 사람에게 1만달러의 현금 지급과 함께 무료로 일할 공간을 제공하고 아파트 임대료까지 할인해주는 ‘원격 리모트 구상’ 사업이다. 도시에 창조적 인재를 끌어들여 성공적인 인재 커뮤니티를 조성한다는 전략이다.

조건은 18세 이상으로, 재택근무를 하거나 오클라호마주 외부에 사업장이 있는 자영업자로서 6개월 이내에 툴사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와 비교할 때 생활비를 50% 이상 낮출 수 있고 월 임차료를 1800달러가량 절감할 수 있다. 아늑한 전원생활은 덤이다. 2018년 시작된 이 사업을 통해 수백 명이 이사를 마쳤으며 아직도 250명의 재택근무자를 찾고 있다고 한다. 미 언론에 따르면 조지아주 사바나와 버몬트주, 캔자스주 토피카 등이 툴사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도시와 창조적 계급》의 저자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는 최근 브루킹스연구소 사이트에 실은 글에서 전염병 사태 이후 도시가 다시 열릴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하면서 툴사와 같은 도시가 코로나 이후 부상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이 글에서 도심을 구성하는 상점과 건물의 75%가 현재의 위기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며 재택근무자가 지역 사회와 연결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 건 전염병을 방지할 수 있는 공항이다. 공항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므로 신속하게 가동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바로 대체 가능한 자전거 및 스쿠터 공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전거도로도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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