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노동시장 구조 탓에 일본이 ‘중산층 감소’와 ‘저성장’에 시달리고 있다는 영국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보고서가 나왔다. 일본이 고성장기에 도입한 ‘종신 정규직제’와 ‘연공서열 임금제’가 “모두 공평하게 가난해지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말았다”는 진단이다. 청년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취직하더라도 생산성보다 낮은 급여에 시달리는 것도 종신 정규직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30여 년 전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은 주지하는 대로 1990년대 ‘버블 붕괴’ 후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모든 계층에서 소득이 줄고, 빈곤율(가구소득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비율)은 15.7%까지 높아졌다. OECD 회원국 평균 빈곤율(11.4%)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또 정규직 해고가 쉽지 않다 보니 기업들이 비정규직 채용으로 몰려가고 있다. 작년에도 일본의 비정규직은 2.1% 증가한 반면 정규직은 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고용 안정에 매달린 게 역설적으로 비정규직 급증과 소득감소라는 악순환을 불렀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일본 사례라지만 오늘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우리 노동계가 밀어붙이는 ‘해고 금지’와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내용상 일본의 종신고용제나 연공서열임금제와 별반 차이가 없다. 일부 강경 노동세력의 시대착오적인 요구에 정부가 매번 밀리기만 하는 점이 더 걱정스럽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중산층이 사라지면 소비가 더 침체될 것’이라며 일본이 노동시장을 ‘성과중심’으로 개혁할 것을 주문했다.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더 이상 종신고용제 유지는 곤란하다”고 말하는 등 일본은 뒤늦게나마 변화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한국 귀족노조들도 사정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여전히 부도로 치닫는 기업에서조차 ‘철밥통 보장’이 단골메뉴다. 정부도 대선공약인 ‘직무급제 도입’ 등 최소한의 개혁마저 외면한 채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같은 환심정책에 여념이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대한해협을 건너오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