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칼럼] 공정 채용과 고용 세습
‘인천국제공항 사태’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든지 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해 공정성을 훼손한 대표적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본사 정규직원이 1400명인 회사가 외주 보안검색요원 1900명을 직접 채용하기로 하면서 사달이 났다. 이들을 전원 직접 채용하느라 취업준비생의 기회가 날아간 것은 둘째 치더라도 채용 절차·기준에서도 문제가 불거졌다. 2017년 5월 12일 이전과 이후에 입사한 사람들의 채용 기준이 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한 이날 ‘연내에 전원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방침이 발표됐던 것이 이유다. 이걸 알고 입사한 사람은 좀 더 엄격한 선발 절차를 거치도록 정해졌다는 것이다.

혼선과 난맥상을 지켜보던 청년들 사이에선 분노가 터져나왔다. 취업난뿐만 아니라 초중고 시절부터 극한 경쟁에 시달려온 세대다. 공기업 취업문은 수백 대 1의 경쟁률이 기본이다. 이들에게 ‘공정’은 마지막 희망이다. 도전해볼 마음이라도 먹자면 최소한 가능성이라도 공평하게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산재유족 특채 vs 고용세습

취업에서 특권이란 말은 어디서건 용납되지 않는다. 대기업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퇴직자 자녀의 특별채용을 약속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용 세습’ ‘현대판 음서제’로 불린다. 정부는 2015년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거쳐 부당한 단체협약이라며 시정할 것을 권고했다. 법원도 고용 세습이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으며 ‘위법’하다는 판결을 2013년부터 잇따라 내놨다. 사정이 이쯤 되자 대기업 노조가 손을 들었다. 현대차도 2018년 단체교섭에서 특채 조항을 삭제했다. 다른 기업도 비슷하다. 그런 중에 지난달 17일 대법원에서 유자녀 특별채용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사건은 이렇다. 자동차회사에서 일하던 한 근로자가 장기간 화학물질에 노출돼 결국 암으로 사망했다. 유자녀는 산재 유족을 특별 채용한다는 단체협약 조항을 이행하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정부와 법원도 금지한다며 회사는 특별 채용을 거부했고 유가족은 노동계 도움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고용을 세습해 공정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주장이다. 1심, 2심은 모두 ‘공정’에 무게를 실었다. 산재 유자녀라도 특별채용은 안 된다는 얘기다. 사건을 받아든 대법원은 고심에 빠졌고 공개변론을 택했다.

대법원 공개변론에 쏠린 눈길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공개변론에서 변호인, 참고인들 사이에는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오갔다. 대법관들도 서로 손을 들고 질문 기회를 청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8명이나 나섰다. 대법관들은 “산재 유가족 특채는 (기업당) 연평균 2인 미만 정도니 별로 크지 않다” “산재 특채자보다 대기업 오너 자녀여서 경영권을 세습하는 게 더 특혜”라고 했다. “청년 실업이 문제지만 산재 유족 특별채용을 무효화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일자리가 과연 몇 개나 되겠나”라는 지적도 했다. 대법관들의 생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말이다.

대법관들의 시선은 청년 눈높이와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문제는 산재 유족으로 특채된 인원의 ‘규모’가 아니라 ‘공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대법관들은 약자 보호에 힘을 싣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산재 유가족과 취업 기회를 잃는 취준생 중 누가 더 약자인지는 대법원이 현명하게 판단해줄 것이다. 그러나 ‘불공정’의 우려를 대법원이 말끔히 해소해줄지 의문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다. 법원은 판결문으로 말한다. 기다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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