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 등 첨단소재 3종의 수출 규제를 시작한 지 만 1년이 지났다. 대일(對日) 의존도가 최대 94%(불화폴리이미드)인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수급 차질이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던 부정적 전망은 다행히 비켜갔다. 오히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공급처 다변화와 국산화가 진행되면서 1년 새 주가가 2배 넘게 오른 반도체 소재회사가 속출할 정도로 전화위복이 된 측면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단 한 건의 생산 차질도 일어나지 않고 안정적 공급체계를 구축하는 성과를 만들었다”고 자평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일본의 치졸한 보복이 ‘메모리 강국’이란 단잠에 빠져 있던 한국 경제의 야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 셈이다. 단순히 수입 대체를 넘어 반세기 가까이 ‘일본은 넘사벽’이라며 자조했던 소부장 분야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점은 결코 작지 않은 소득이다.

하지만 경계할 것은 과도한 자화자찬이다. 일본이 규제를 했다지만 다소 번거로운 절차를 만든 것이지 실질적인 수출거부는 없었다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정부가 적폐로 생각하는 대기업들이 일본의 공세에 맞서는 일등공신이었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탁월한 위기관리능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냈다. 규제완화의 힘도 다시금 깨달을 필요가 있다. 세제·금융·통관·인허가 관련 일괄 규제완화가 기업들의 원활한 물량 확보에 큰 도움이 됐다.

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강한 경제”를 또 강조했다. 현실은 몇몇 소재분야에서 성과를 냈을 뿐, 핵심 부품·장비의 대외의존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규제를 풀지 않는 일본의 행태를 보면 언제든 2차, 3차 규제도 가능하다. WTO 제소절차를 진행하고 일본 기업 압류자산의 현금화를 진행하며 칼자루를 휘두르기보다 냉정한 속도조절이 절실한 이유다.

수출규제의 발단이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판결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과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 북핵과 미·중 갈등 대처 등 한·일이 협력해야 할 굵직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치졸한 보복’이라고 욕하면서 그 치졸함을 더 부추기는 식으로는 파국을 부를 뿐이다. 북한과도 대화하는데 일본과 진지한 대화를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