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희 < 서울대 AI위원회 위원장 yhchoi@snu.ac.kr >
[한경에세이] 엔지니어가 대접받는 사회

고교 졸업을 앞둔 3학년 시절, 학교 자습실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자습실 앞쪽 벽에는 ‘게으른 농부는 밭이랑만 세고, 게으른 학생은 책장만 센다’는 글이 걸려 있었다. 꼭 날 집어서 꾸짖는 듯한 글이었다.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은 가로등 아래에 모여 바둑을 두거나 잡담을 했다. ‘미래에는 어떤 직업이 좋을까’라는 진지한 논의도 꽤 있었는데, ‘공대가 좋은지 기초과학이 좋은지’와 같은 유치한 수준이었다. 나는 공학이 무언지도 잘 모르면서 전자공학을 택했다. 이 분야가 지금 세계를 이끌고 있으니 참으로 운이 좋은 셈이다.

1970년대 대학은 학생운동으로 늘 문이 닫혀 있어서 제대로 된 수업은 거의 받지 못한 채 졸업했다. 석사과정에 가서야 겨우 공부를 맛보기 시작했는데, 당시 원로교수님이 일깨워 준 공학의 개념은 나에게 큰 깨달음이었다.

“공학은 진리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공학은 100% 맞는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협에 의한 최선의 답을 찾는 것이다. 타협이란 해결책의 성능, 가격, 만족도 등인데 특히 가격이 중요하다. 공학자는 몇 년마다 계속 새로운 문제를 풀어가야 하고, 동시에 여러 문제를 풀기도 한다.”

졸업 후 첫 직장으로 택한 연구소 입사 면접에서 “엔지니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배운 대로 답하고 합격했지만 실천은 어려웠다. 당시 한국의 산업은 선진국을 모방하기에도 벅찼고, 낮은 인건비에 주로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엔지니어의 역할을 따질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과학기술과 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학이란 무엇인가” “엔지니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며 성찰이 필요하다. 공학의 본질인 발명-응용-산업의 사이클이 잘 적용된 예로 우리나라에는 반도체, 정보통신, 에너지산업이 있다. 앞으로는 바이오, 유통, 인공지능 분야가 유망할 것이다. 본질을 외면하고 여전히 낮은 임금을 좇아 생산시설을 후진국으로 넘기거나, 금융투자에 과도하게 의존한 국가들이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공학을 배우고 사회로 나가는 졸업생의 진로는 이전보다 정말 다양해졌다. 학계, 산업계, 창업은 물론 법조계, 연예계까지 넘본다. 실로 ‘엔지니어링 에브리웨어(Engineering Everywhere)’의 시대다. 창의,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공학과 엔지니어의 본질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더불어 공학의 사회적 책임, 윤리에 대한 인식도 높아져야 하며 첨단기술에 의한 사회 양극화 심화에 대한 책임도 같이 나눠야 한다.

10년 뒤, 20년 뒤에도 엔지니어의 역할이 현재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풀어야 할 문제의 종류와 난이도가 바뀔 뿐이다. 유연한 기본기를 갖춘 능력 있는 엔지니어가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가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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