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 생활경제부장
[데스크 칼럼] '무지의 산물' 재포장금지법

‘지옥에 이르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서양 속담을 거론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례가 ‘로베스피에르의 우유’다. 1789년 좌파 자코뱅당을 이끌고 프랑스혁명을 성공시킨 로베스피에르는 아이들에게 우유를 값싸게 먹이고 싶었다. 우유값을 올리는 상인들은 단두대로 보내겠다고 포고령을 내렸다.

그 서슬 퍼런 명령에 우유값이 폭락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우유값이 떨어지자 농민들이 젖소를 팔거나 도축했고, 우유 공급이 줄어들었다. 가격은 이전보다 더 올랐고, 웬만한 중산층집 아이들까지 우유를 못 먹는 사태가 벌어졌다. 선의로 시작한 무지한 정책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환경부, 시장 혼란 예측 못해

이런 황당한 정책이 또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많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지난 22일 환경부가 시행을 6개월 연기한 ‘재포장금지법’이 딱 그런 사례다.

경위는 이렇다. 2018년 중국이 환경 문제를 이유로 폐플라스틱과 폐지 등의 수입을 금지하자 한국에선 ‘쓰레기 대란’이 벌어졌다. 쓰레기의 80%를 차지하는 포장지를 줄이기 위해 과대포장, 재포장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환경부는 ‘완벽한’ 선의를 갖고 포장 쓰레기 줄이기에 나섰다. 20여 차례 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열심히 대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상품을 재포장해 팔아도 좋지만 가격을 할인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대책 중 하나로 넣었다. 개별상품을 묶어 재포장할 필요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자칭 ‘신의 한 수’였다. 그러나 이런 방안이 발표되자마자 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정부가 기업들의 할인 마케팅까지 금지하느냐”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당황한 환경부는 방안 발표 이틀 만에 백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억울해했다. “묶음 포장에 대한 가격 할인을 규제하려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포장을 규제하려던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환경부는 분명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려 했을 뿐이다. 다만, 자신들의 정책이 시장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완벽히’ 몰랐을 뿐이다. 그러니까 ‘세계 최초로 묶음할인 마케팅을 금지한 환경부’라는 기사를 쓴 본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기레기’(기자와 쓰레기를 결합한 조어) 운운하며 거칠게 항의할 용기도 났을 것이다.(말이 난 김에 환경부 관료들에게 한마디만 해주고 싶다. “무식도 죄다”라고.)

지옥행 경제정책 가속화 우려

문제는 현 정부 경제정책의 대부분이 이런 식이라는 점이다. 완벽한 선의와 무지로 시작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는 패턴이다. ‘혁신적 포용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급하게 밀어붙인 최저임금 1만원 인상과 주 52시간제 시행은 최악의 일자리 감소 사태로 귀결됐다. 안전한 친환경 에너지 국가로 가겠다며 강행한 탈원전 정책은 에너지 공기업에 ‘유사 이래’ 최대 적자를 안겨줬으며 중국 태양광업체들의 대박, 원전 브레인들의 엑소더스로 이어지고 있다. 일자리·복지·재정에서 모두 낙제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지옥행’ 경제 정책들이 가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뜻밖의 ‘코로나 대박’으로 압도적 다수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전 국민 기본소득제 실험을 밀어붙이고 있다. ‘기레기’ 소리를 계속 듣더라도 “경제적으로 실패한 정부”(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의 지옥행 경제정책을 파헤치고, 견제하고, 막아내는 게 언론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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