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쌍용차, 이대론 살아남기 힘들다
쌍용자동차의 모태는 ‘하동환자동차제작소’다. ‘드럼통 버스왕’ 고(故) 하동환 전 한원그룹 명예회장이 1954년 1월 설립했다. 폐차된 미군용 트럭의 부품을 떼어내 재활용한 하동환식 마이크로 버스는 1960년대 서울 시내버스의 70%를 차지했다. 1966년 5월에는 버스를 브루나이에 수출했다. 현대자동차가 1976년 포니를 수출하기 10년 전의 일이다. 동아자동차(1977년)로 이름을 바꿔 달고 거화(巨和·옛 신진지프차)를 인수하는 등 사세를 키워가다 1986년 쌍용그룹에 매각됐다.

‘한국인은 할 수 있다(Korean Can Do)’는 의미를 담은 코란도는 쌍용차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명가(名家)’ 반열에 올려놓았다. 다른 국산차 회사들이 일본 미쓰비시와 기술 제휴를 할 때 쌍용차는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와 손잡고 체어맨을 개발했다. 벤츠가 체어맨에 대해 유럽 수출 금지 조건을 거는 등 견제에 나설 정도였다.

쌍용차가 또다시 기로에 섰다.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이 새로운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다. 대우그룹(1998년), 중국 상하이자동차(2004년), 마힌드라(2011년) 등으로 주인이 바뀌었지만 잊을 만하면 위기가 되풀이되는 ‘잔혹사’를 반복하고 있다.

쌍용차는 13분기째 적자다. 지난 1분기엔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5700억여원 초과해 외부감사인(회계법인)으로부터 ‘의견거절’ 판정을 받았다. 올 들어 르노삼성과 한국GM에도 밀려 점유율이 5위로 떨어졌다.

쌍용차가 경쟁력을 잃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장기간의 노사 분규와 해고자 복직에 따른 비용 부담, 치열해진 시장 경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수출 급감 등이 얽히고설켜 있다.

무엇보다 고비용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쌍용차의 올 1분기 매출은 6422억원인데, 매출 원가(생산비용)가 6351억원에 달했다. 원가율이 99%다. 차를 팔아도 남는 게 없다. 원가 중 눈에 띄는 부문이 인건비 증가다. 해고자 복직으로 직원이 늘어난 데다 대법원 판결로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정기상여금 포함)된 탓이다. 쌍용차의 인건비는 2011년 2334억원에서 지난해 4289억원으로 83.7% 늘었다.

경쟁에서도 밀렸다. 현대자동차 투싼과 기아자동차 스포티지는 코란도 시장을 잠식했다. 소형 SUV 티볼리(2015년 출시)는 2030세대를 사로잡으며 2016년 9년 만에 쌍용차에 영업흑자(280억원)를 안겨줬지만, 니로·셀토스(기아차), 코나·베뉴(현대차), XM3(르노삼성), 트레일블레이저(한국GM) 등 경쟁 모델이 쏟아지자 판매량이 급감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여파로 수출마저 막혔다.

뜨거워진 미래차 경쟁과 합종연횡이 활발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감안하면 쌍용차의 생존 방정식을 풀기는 쉽지 않다. 글로벌 업체들이 전기차 등 미래차 투자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쌍용차는 아직까지 전기차를 한 대도 내놓지 못했다. 계획대로 내년에 전기차(준중형 SUV)와 중형 SUV를 출시하려면 2000억원가량의 투자비가 필요하다. 대주주는 난색을 표했고, 산업은행은 지원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쌍용차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은 싸늘하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7일 “‘생즉필사 사즉필생’이라고 했는데, 쌍용차 노사는 살려고만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산업은행이 돈만 넣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쌍용차 위기의 본질은 현재보다는 미래에 대한 우려에 있다. 쌍용차 스스로 미래 생존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시장에 심어줘야 한다. 코란도, 무쏘 같은 경쟁력 있는 신차를 다시 내놓을 수 있다는 믿음, 새로운 방식의 비즈니스로 생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다른 투자자를 찾는 데만 집중하면, 어떤 주인을 만나도 위기는 또 닥쳐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