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적 이해나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심판해
소수자의 최소한의 권리 살피라는 뜻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전문가 포럼] 판사는 왜 선거로 뽑지 않을까

인간 사회에는 늘 갈등이 존재한다. 서로의 생각과 처지와 이해관계가 다르다 보니 이런저런 계기로 충돌이 일어난다. 진지하게 설득하고 잘 들어 상대방 주장에 일리가 있다면 자기 주장을 조금씩 굽혀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민주사회의 기본이다.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결론을 뒤로 미루고 논의를 지속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모든 논의에 반드시 결론이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결론에 따른 조치가 시급한 경우도 있다. 이때는 대부분 다수결에 따라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다수결이 반드시 정당한 결론이나 민주적인 결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엘리베이터 장기수선충당금에 관해 입주자대표회의가 주민의견 수렴을 근거로 동등 부담하기로 결정하고 이에 대해 1층과 2층 거주자들(전체의 16%)이 이의를 제기한 사건이 있었다. 지하 주차장도 없는 곳이었으므로 1층과 2층 거주자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동등 부담 지지자가 다수였지만 이것이 부당하다고 한 주민도 상당수 있었다는 점(응답자 중 46%)이 우리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를 보여준다.

전에는 학생들이 돌아가며 교실 청소를 했다. 만약 한 해 동안 청소를 여자가 할지 남자가 할지 다수결에 부친다면 그런 결정이 정당하거나 민주적일까? 이미 이해관계가 고정돼 누가 유리하고 불리한지 명백한 상황에서 다수결은 소수자에게 불이익을 강요하는 것에 불과하다. ‘무지의 베일’을 상정하고 설령 그 결정으로 가장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내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결정이 옳고 불가피하다고 동의할 수 있어야 정의가 지켜지는 것이다.

법원의 사회적 기능은 갈등 해결에 있지만, 그 과정에서 소수자의 최소한 권리를 보호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주민들이 특정 시설 입주를 강력히 거부하는 경우 인허가권을 행사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은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주로 복지, 환경 관련 시설에 반대가 집중된다. 단체장들은 법적으로 허용되고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라도 선거권자인 주민들이 반대하면 일단 인허가를 보류하고 주민 동의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시설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설로 운영자에게 별다른 재력이 없는 경우도 주민들의 동의를 받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사건에 대해 법원이 불허가처분 취소판결을 선고하면 허가에 부담이 없어진다. 때로는 단체장들이 골치 아픈 사건은 일단 불허가한 뒤 법원의 취소 판결을 기다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만약 판사도 선거로 선출한다면 주민들은 선거 과정에서 입후보자에게 특정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물어볼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투표할 것이다. 판사로서도 자신을 선출해주는 유권자 집단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며 적어도 자신의 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효과적인 공약은 유권자 중 누군가에게 선별적으로 유리한 공약이다.

일부 외국에서 주(州)법원의 1심 판사들을 선거로 뽑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 당파적 선거운동이 문제가 되고 선거 과정에서 도와준 유력자들과 선출된 판사 사이의 유착 의혹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판사를 선거로 뽑게 되면 지역 주민과 법원 간의 친밀도를 높여 내 손으로 뽑은 우리 판사라는 느낌을 주고 판결 결과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선거구가 조금만 커져도 선거구민들은 판사 입후보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특히 그 전문가로서의 능력과 적합성에 대해 알기 어렵다. 결국 선거는 대중적 이미지에 좌우될 것이다. 특히 당파적 분열이 강한 사회에서는 어느 당파의 지지를 받느냐가 결정적이다. 공천이 실제 선거보다 더 중요한 과정이 되고 입후보자의 당선 여부는 선거권자보다 공천권자에 의해 좌우된다. 판사들도 정치색을 드러내고 사실상의 정당 지지를 받으려 할 것이다.

판사를 선거로 뽑지 않는 것은 정파적 이해나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서 심판하라는 뜻이며, 정치 과정을 통해 대변되기 어려운 소수자의 처지를 통시대적·통사회적으로 잘 살펴 그 권리를 보호하라는 뜻이다. 우리 헌법은 선출되지 않은 사법부가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사회의 핵심적 가치와 인권을 옹호하는 보루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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