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43)] 이름은 운명이다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꽃은 꽃이라고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된다고 노래했다. 사람도 이름으로 존재한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죽어서도 이름으로 기억된다. 로마 격언에 ‘노멘 에스트 오멘(Nomen est omen)’이라는 말이 있다. ‘이름에 운명이 있다(In name is destiny)’는 뜻이다. 그만큼 이름이 중요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름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가계(家系)와 아이에게 바라는 기원이 그것이다. 서구에서는 성(姓)이 직업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의 선조는 대장장이(smith)였을 것이다. 12~13세기 중세 유럽에서 대장장이가 직업인 스미스를 성으로 사용한 이후 영미에서 가장 흔한 성이 됐다. 마찬가지로 관광의 아버지 토머스 쿡(Thomas Cook)과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Tim Cook)의 조상은 요리사였을 것이다. 제임스 베이커(James Baker) 전 미 국무장관의 선조는 제빵사,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Elisabeth Taylor)의 선조는 재단사(tailor), 미국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 버틀러(Benjamin Franklin Butler)의 선조는 집사가 아니었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인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스페인 대사로 근무할 때 말레이시아 대사의 이름은 케네디, 부인 이름은 조세핀이었다. 아마 부모가 케네디 대통령, 나폴레옹의 부인과 같이 크게 되라는 희망에서 작명하지 않았을까.

유명 인사에게서 따온 이름은 기억하기 쉽다. 광고비 없이 광고 효과를 보는 것과 같다. 그만큼 유혹도 크다. 카잔(Kazan)이라는 미국 영화감독은 젊은 시절 프랑스 화가인 세잔(Cezanne)으로 성을 바꾸라는 제의를 받았다. 미국의 전설적인 농구선수 줄리어스 어빙(Julius Erving)은 유명 소설가인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으로 성명을 바꾸라는 권유를 이겨냈다.

직업과 연관되고 위인 이름 따기도

[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43)] 이름은 운명이다
단점도 있다. 유명 인사가 추락하면 같이 추락하게 된다. 아돌프 히틀러라는 이름이 한 예다. 아돌프는 20세기 초 독일에서 인기 있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돌프 히틀러는 기피 대상이 됐다. 최근 네오 나치주의자들이 자녀 이름을 아돌프나 히틀러로 짓는 경우도 있지만 다시 인기 있는 이름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명인의 이름이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다.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의 아들 찰스 에디슨은 뉴저지 주지사를 지낸 정치가였다. 선거운동 당시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한다는 비난에 직면하자 그가 말했다. “나는 에디슨이라는 이름을 이용할 생각이 없어요. 여러분은 아버지의 실험 결과물이 저라는 것을 알아주셔야 해요.”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필자의 관심을 끈 성이 있었다. 바로 코레아(Correa)다. 혹시 코리아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서였다. 코레아라는 성은 스페인, 포르투갈 및 중남미에 의외로 많다. 아쉽게도 한국과 관련은 없다. 스페인어로 ‘혁대’를 의미하는 코레아라는 성은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유래해 포르투갈과 스페인 전역으로 퍼졌다. 그 후 코레아 일가가 이주해 중남미 전역에 살게 됐다.

姓 코레아는 한국과 관계 없어

이름은 성격이나 직업에 영향을 미친다. 이름 때문에 평생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미국 캔자스시티 로열스팀의 투수 리처드 러브레이디(Richard Lovelady)는 선수로 등록할 때 리처드의 애칭인 딕(Dick)을 썼다. 러브레이디는 별명이 아니고 성이다. 딕이 은어로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면 배꼽을 잡고 웃을 것이다. 독일 축구선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Bastian Schweinsteiger)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의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성 슈바인(schwein)은 돼지, 슈타이거(steiger)는 사육사를 의미한다. 성장 과정에서 얼마나 놀림을 받았을까.

이름은 뜻도 중요하지만 발음도 중요하다. 부르기 쉽고 듣기 좋아야 한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이름을 발음해보자. 쉽지 않을 것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저서 《여섯 번의 위기(Six Crises)》 사인회를 열었다. 닉슨은 고객 이름과 함께 서명을 했다. 한 신사의 이름을 묻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은 일곱 번째 위기를 맞이했소. 내 이름은 슈타니슬라우스 보예츨레스츠키(Stanislaus Wojechzleschki)요.”

자녀 이름을 지을 때 신중해야 한다. 만일 부부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부부가 곧 태어날 딸의 이름을 두고 논쟁을 했다. 부인이 라나(Lana)라는 이름을 제의했으나 남편은 맘에 들지 않았다. 완강한 부인에게 그는 꾀를 내어 말했다. “좋은 생각이구려. 내 첫사랑의 이름이 라나였소. 그녀는 예쁘고 지성적이었지. ” 바로 다음날 부인은 이름을 바꾸는 것에 동의했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