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로 유럽과의 공동연구 막힐 듯
코로나로 악화된 경제도 연구엔 치명적

김종민 < 英 케임브리지대 전기공학과 교수 >
[세계의 창] 브렉시트·코로나 벽 마주한 英 대학 연구실

유럽대륙의 켈트족이 브리튼(현재 영국)으로 이동한 건 기원전 100년경이다. 기원전 55년에 로마 총독 카이사르가 브리튼 원정을 했으며, 기원후 43년에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직접 정벌에 나섰다. 78년에는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명장 아그리콜라를 보내 스코틀랜드를 합병하려고 했다. 122년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스코틀랜드 남쪽에 하드리아누스 성벽을 쌓아 켈트족의 남하를 막았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06년 요크에서 황제로 등극한다. 400여 년의 로마제국 통치 끝에, 5세기 초에는 브리튼으로 이주한 게르만계 앵글로색슨족이 주인이 됐다.

그 후 북유럽의 바이킹이 7세기부터 동남부를 점령해 한 시대를 구가하다가, 871년 알프레드 대왕이 다시 앵글로색슨의 기틀을 닦았다. 이어 바이킹인 크누트 왕이 앵글로색슨을 몰아내고 덴마크, 노르웨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에 왕국을 형성한다. 1066년 노르망디의 노르만인 왕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를 점령해 오늘날 영국의 기초를 세운다. 1714년 앤 여왕이 사망하자, 독일 하노버 선제후국의 외척 후손 조지 1세를 영국 국왕으로 초대해 현재의 왕실까지 이어진다. 지난 2000년간 영국 역사는 켈트, 로마, 앵글로색슨, 바이킹, 노르만, 하노버 등과 엮어져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유럽인 중 영국을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독일 음악가 멘델스존과 헨델을 꼽을 수 있다. 멘델스존은 영국을 여러 번 방문해 헤브리디스 제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표현한 ‘핑갈의 동굴’ 서곡, 결혼 행진곡으로 유명한 ‘한여름 밤의 꿈’(셰익스피어)을 음악으로 만들고, 스코틀랜드에 대한 사랑을 교향곡 3번으로 표현했다. 헨델은 영국으로 이주해 고향 하노버의 조지 1세가 영국 국왕으로 부임한 뒤 그 유명한 ‘수상음악’을 국왕에게 헌정하고, 할렐루야 합창곡으로도 유명한 ‘메시아’ 등을 작곡해 영국의 음악 위상을 크게 고양했다. 사후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됐다고 한다. 이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영국을 사랑한 세계화된 유럽인이었다.

2016년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가 예상외로 아슬아슬한 차이로 통과됐다. 이후 여러 충격이 있지만, 제일 큰 충격은 대학교수들에게 미치지 않았을까?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의 1년 예산은 3조원가량 되는데 유럽에서 교수들이 유치하는 연구비가 15~20%를 차지한다. 1년에 4000억~6000억원 정도다. 옥스브리지대학이 유럽에서 받는 연구비 중 하나는 ‘호라이즌 2020’이란 연구 프로그램이다. 지난 7년간 100조원(약 80억유로)의 연구비가 투자됐는데, 주로 공동연구와 응용과학에 집중된다.

또 하나는 유럽 연구평의회의 초임교수용 1단계, 중견교수용 2단계, 저명교수용 3단계 연구프로그램으로, 각각 150만유로(약 20억원), 200만유로(약 27억원), 250만유로(약 34억원)가 연구자 개인에게 5년간 지급되는 과학기반 프로그램이다. 이 연구비는 영국 과학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쳐 왔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교수들은 유럽과의 공동연구도 다 막히게 된다. 설상가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나빠진 경제는 영국 내 연구비 확보를 어렵게 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 연구과제의 포용적이고 창의적 분위기와 공동연구를 통한 다양한 역사·언어·풍습·문화를 경험하는 덤도 브렉시트와 코로나19로 인해 사라질 것 같아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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