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그린뉴딜과 다른 그린딜
공식 탈원전 원칙 존재하지 않아
새 정책 추진 땐 국민 합의 필요"

강경민 런던 특파원
[특파원 칼럼] 유럽연합 그린딜의 오해와 진실

‘2050년 유럽의 탄소 순배출 제로화.’ 유럽연합(EU)의 이른바 녹색정책인 ‘그린딜’의 목표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저탄소사회를 목표로 녹색경제 위주의 ‘새판’을 짜겠다는 뜻이다. 27개 회원국 합의에 따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전인 지난해 12월 공식화됐다. 통상 새 시스템을 구축할 때 뉴딜(New Deal)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EU는 ‘뉴’를 뺐다. 20여 년 전부터 꾸준히 해 왔던 정책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한국판 뉴딜의 일환으로 그린뉴딜을 내세웠다. 정부가 그린뉴딜의 당위성을 역설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제시하는 사례가 EU 그린딜이다. 국내 226곳 기초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지난 5일 한국도 EU처럼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 2050년 탄소배출 제로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환경단체들도 적극 동조하고 있다.

[특파원 칼럼] 유럽연합 그린딜의 오해와 진실

그린딜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고, 화력발전 비중을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해 말 기준 EU의 재생에너지(수력·풍력·태양광·바이오매스) 비중은 총 발전량 중 34.6%에 달한다. 석탄발전 비중은 18.2%에 불과하다. 석탄발전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동유럽 회원국까지 포함한 수치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로 한정하면 재생에너지 비중은 40%가 넘는다. 반면 한국은 5%에 불과하다. 석탄발전 비중은 40%가 넘는다.

1990년대부터 에너지 전환정책을 추진한 EU와 후발주자인 한국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무리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EU는 단일 국가가 아닌, 27개국의 연합체다. 회원국마다 주력 에너지원도 다르다. 일조량이 풍부한 스페인은 태양광, 바람이 강한 북해에 면한 북유럽 국가는 풍력, 수력자원이 풍부한 오스트리아는 수력을 주력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한국보다 몇 보 앞서 있는 EU조차도 그린딜 과정에서 기존 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자동차 및 항공산업 등의 피해가 예상된다. 막대한 규모의 일자리도 사라질 것으로 봤다. 이를 위해 EU는 2027년까지 최소 1000억유로(약 137조원)를 관련 분야에 지원할 방침이다. 후발주자인 한국은 훨씬 더 혹독한 구조조정의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원자력발전에 대한 시각도 다르다. 전반적으로 원전이 감소하는 추세인 건 맞다. 하지만 EU 차원의 탈원전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회원국마다 원전 정책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EU는 치열한 논쟁 끝에 지난해 12월 그린딜 과정에서 원전을 앞세우느냐 여부를 회원국 결정에 맡겼다. EU는 ‘2050년 탄소 제로화’라는 목표도 내심 버거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탄소배출이 없는 원전이 탄소감축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EU에서 원전은 전체 발전량의 25.5%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재생에너지와 달리 원전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나 은행대출 혜택 등의 지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린딜을 탈원전과 동일시하는 국내 일부의 시각은 여기서 비롯된 오해다.

EU 사례를 국내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뚜렷하지만 시사점도 명확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그린뉴딜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다. 문제는 ‘어떻게’ 가느냐다. EU는 그린딜을 공식화하기 앞서 2018년 초부터 전문가들과 함께 그린딜을 위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렸다. 논의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구체적인 로드맵을 담은 법안은 올 연말에나 완성될 예정이다. 20여 년 동안 녹색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호응도 얻었다.

한국은 문 대통령이 그린뉴딜을 처음으로 언급한 지 두 달 만인 다음달께 종합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그린뉴딜은 녹색시대를 위한 새 시스템을 구축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기존 산업의 구조조정이라는 고통도 뒤따른다. 국민의 호응과 참여가 절실하다는 뜻이다. 그린뉴딜은 탈원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정부가 두 달 만에 내놓겠다는 그린뉴딜의 밑그림이 벌써부터 걱정되는 이유다.
코로나19에 뒷전으로 밀린 EU 그린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유럽연합(EU)이 추진하는 그린딜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기업들에 자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당초 합의한 ‘저탄소 녹색조건’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전 세계 각국 정부가 이달 초까지 기업들에 지원한 코로나19 경기부양 자금은 5213억달러(약 630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 중 97.6%인 5090억달러가 항공과 자동차, 석유회사 등 탄소배출이 많은 업종에 지원됐다. 재생에너지 등 녹색산업엔 2.4%인 123억달러가 지원되는 데 그쳤다.

당초 EU는 지난해 12월 그린딜을 공식화하면서 탄소배출이 많은 업종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항공과 자동차산업은 탄소배출량이 많은 분야로 꼽힌다. 하지만 각국 정부가 자국 기업과 일자리를 살리기 위해 당초 합의한 그린딜의 원칙을 외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EU는 회원국들에 지원되는 7500억유로 상당의 코로나19 회복기금에 대해선 저탄소 녹색조건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지원 전제조건으로 재생에너지 등 저탄소 업종에 기금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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