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버핏도 사람이었네
워런 버핏 미국 벅셔해서웨이 회장(89)은 투자에 관한 한 실패 한번 안 했을 사람 같다. 그런 그도 “투자를 후회한다”고 했던 적이 있다. 2013년 미국 식품회사 하인즈를 인수했다가 3조4000억원의 손실을 봐야 했다. 앞서 1989년엔 항공사 US에어에 투자했다가 크게 데었다.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항공업계 경쟁력이 회복되면서 버핏의 ‘항공주 사랑’은 이어졌다. 하지만 이게 다시 버핏을 나무에서 떨어뜨릴 줄 몰랐다. 코로나 사태로 항공사들이 도산 위기에 몰리자, 버핏은 4대 항공사 보유주식을 지난달 초 전량 손절매했다. 평생 연 20%대 수익률을 기록한 그였지만, 작년 수익률은 11%에 그쳤다. 시장 수익률(S&P500 29% 상승)을 훨씬 밑돌았다. 올 1분기 벅셔해서웨이는 497억달러(약 60조원)의 순손실을 냈다.

올 들어 버핏의 투자활동이 저조하자 ‘현인(賢人)은 무슨…’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그의 스승 필립 피셔의 아들이자 투자가인 켄 피셔는 “버핏이 나이가 들면서 소극적인 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고 깎아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버핏이 평생 옳았지만 가끔 실수도 한다”고 숟가락을 얹었다. 그의 명성에 금이 가는 순간이다.

버핏의 내리막은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주에 과감하게 투자하지 못한 데서 예고됐다. 애플 투자 정도가 예외다. 일론 머스크와 논쟁을 벌이고 테슬라에 투자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머스크가 테슬라 급속충전소를 다른 전기차 업체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겠다고 하자, 버핏은 “아직 좋은 해자(진입장벽)인데”라며 의아해했다는 후문이다. 버핏은 내재가치가 뛰어남에도 시장에서 저평가된 기업을 발굴하는 ‘가치투자’ 원칙을 지켜온 인물이다. 테슬라처럼 주가수익비율(PER)이 매우 높은 종목에 쉽게 투자하기 힘들었을 테다.

코로나 사태의 전개 양상에 따라 전화위복의 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버핏의 퇴장’을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버핏을 둘러싼 구설보다는 그가 남긴 유산을 잘 살펴야 한다. ‘(버핏과) 같이 투자’가 아니라 ‘(버핏의) 가치투자’에 주목해야 한다.

버핏의 전기 《스노볼(Snowball)》에는 “습기 머금은 눈과 긴 언덕을 찾으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투자환경을 잘 분별해 수익을 눈덩이처럼 불리려면 버핏의 진면목을 찬찬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