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여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 보편 증세론이 대두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는 복지재원 확충을 위해선 조세정의 차원에서 보편적 증세를 추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최근 냈다. 보고서는 “고소득자에 대한 핀셋 증세에 의존한 복지 확대는 재정적으로, 정치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이재명 경기지사도 한 방송 토론에서 “새로운 재원을 만들어야 한다면 증세를 해야 한다”며 “세금을 내서 나도 혜택을 받는다면 조세저항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여권에서 복지 재원조달 수단으로 증세가 거론된 것은 ‘증세 없는 복지’라는 공허한 구호에서 벗어나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재원확보 방안은 쏙 빼고 복지 확대만 주장해온 것은 국민 기만이었다. 정부가 복지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은 국가채무를 늘리든, 증세를 하든 둘 중 하나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은 신용등급 강등, 원화가치 급락 위험이 커 나랏빚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어 증세 외엔 대안이 없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증세 논의를 애써 피해온 것은 국민의 직접 부담이 되는 세금 인상이 인기 없는 정책이어서다.

불가피하게 증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면 편견없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먼저 어느 정도의 복지 확대를 위해 국민은 얼마만큼의 세금을 더 낼지에 대한 합의가 필수다. ‘저부담 저복지’나 ‘고부담 고복지’는 가능해도 ‘저부담 고복지’는 불가능하다. 증세 대상과 관련해 더미래연구소도 지적했듯이 고소득자만을 겨냥하는 것은 조세형평에 맞지 않는다. 법인세 인상은 각국이 경쟁적으로 기업유치에 나선 마당에 부작용이 더 클 것이다. 또 소득세와 법인세는 세율을 올려도 실제 세수증대 효과가 크지 않다는 분석도 많다.

결국 보편적 복지를 위해선 국민 누구나 부담하는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를 올릴 수밖에 없다. 조세의 보편성 원칙에 맞고, 약간의 세율 인상으로도 큰 세수 증대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다. 부가가치세는 1977년 도입 이래 10%의 세율을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대부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부가가치세(소비세)율은 20% 안팎이다. 물론 부가가치세를 올리려면 정부가 더 걷은 세금을 효율적으로 잘 쓸 것이란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정치는 진실을 말하고, 국민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재난지원금이나 기본소득을 마치 공돈인 양 선심쓰듯 뿌리며 국민을 기만해선 안 된다. 국민도 국가로부터 더 많은 복지혜택을 기대하려면 자신의 세금부담이 그만큼 커진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