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야 할 때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외환시장 안정성이 확실히 커졌습니다.”

외환당국의 한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후의 원·달러 환율 움직임을 지켜보며 최근 이런 평가를 내놨다.

2월 14일 달러당 1183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코로나19가 국내외에서 본격 확산되자 3월 19일 1285원까지 올랐다. 원화가치 기준으론 약 9%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낙폭(35%)의 4분의 1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9월부터 2009년 3월까지 원화가치가 거의 50% 폭락하며 코스피 낙폭(약 30%)을 넘어섰던 것과 대비된다.

이번 외환시장의 ‘상대적 선방’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번엔 한·미 통화스와프가 더 빨리 체결됐다. ‘위기 방파제’인 외환보유액도 2008년 말 2012억달러에서 작년 말 4088억달러로 두 배가 됐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수급 여건이 개선된 것도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금융위기 때 외환시장 수급을 크게 교란했던 외환파생상품 거래가 이번엔 별로 없었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과 조선사의 환헤지(환율변동 위험 회피) 물량이다.

금융위기 전 국민연금은 모든 해외 투자자산에 환헤지를 했다. 국내엔 장기 헤지 수단이 없다 보니 국내외 은행들과 1~3개월짜리 단기 ‘외환스와프’ 계약을 맺고 이를 계속 만기 연장하는 방식으로 환헤지를 했다. 한마디로 파생시장에서 달러를 단기로 빌려 장기 해외 자산 투자를 했던 셈이다. 국민연금 환헤지 금액은 2008년 200억달러에 육박했다.

조선사들도 가세했다. 금융위기 전 초호황을 구가했던 조선사들은 배를 수주할 때마다 환헤지용 선물환 매물을 하루에도 수억달러씩 쏟아냈다.

조선사가 선물환으로 판 달러는 선물환을 산 은행으로 넘어갔다. 은행이 환위험을 막기 위해 또다시 환헤지를 했던 이유다. 금리가 싼 단기 달러차입금을 조달해 달러 자산·부채를 매칭(일치)시키거나 외국 은행 등과 단기 외환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은행권 단기 외화차입금을 2003년 말 362억달러에서 2008년 6월 1355억달러까지 폭증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평상시엔 별문제가 안 됐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달러가 부족해지자 단기 스와프와 달러차입금은 외환시장 수급 균형을 붕괴시키는 ‘괴물’이 됐다. 스와프와 차입금 만기를 연장해야 했던 은행 등은 높은 가격(환율)을 주더라도 달러를 구해야 했고, 이는 원·달러 환율을 펀더멘털보다 더 높게 밀어올렸다.

금융위기를 경험하고 국민연금은 2014년 해외 주식·대체자산 환헤지를 중단했다. 작년부터는 해외 채권까지 환헤지를 중단했다. 조선사는 장기간 ‘수주 가뭄’에 시달려 선물환 매도를 대거 줄였다. 이번 코로나 사태 기간에 증권사의 해외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 물량 정도를 제외하고 외환시장 수급 상황이 비교적 안정됐던 핵심 이유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외환시장이 금융위기 직전 상황으로 되돌아갈 조짐마저 보인다. 금융감독규정에 따라 100% 환헤지를 하는 보험사 해외 투자 여력이 줄잡아 300조원 이상 확대됐다. 지난 4월 말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서다. 국내 조선사들은 이달 초 카타르에서 23조원어치 액화천연가스(LNG) 선박도 수주했다.

외환시장에선 벌써부터 보험사발 단기 외환스와프 거래 급증과 조선사발 대규모 선물환 매물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관계당국의 선제적인 대비책 마련이 필요한 때다.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