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相生으로 포장한 이익공유제
상생의 어원은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이다. 본래 있고 없음은 따로 있지 않고 상호 보완한다는 의미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물이 나무를 살리고, 나무가 불을 살리며, 불이 흙을 풍요롭게 하는 것처럼 서로 북돋는 게 상생의 이치다. 이에 보듯 상생은 ‘자발적’인 참여와 ‘호혜적’인 이해를 바탕에 깔고 있다.

21세기 들어 산업계 패러다임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기업 생태계 간 경쟁으로 바뀌었다. 단일 기업으로는 글로벌 시장의 급변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생태계’가 국가 경쟁력의 관건으로 떠오른 이유다.

법으로 강제하는 상생

21대 국회 시작과 함께 여권에서 이익공유제를 도입하기 위해 군불을 지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새 원내대표로 선출된 김태년 의원이 핵심 공약으로 이를 들고나오면서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변화 속에서 이익을 보는 기업이 있을 수 있다”며 “이익을 공유한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익을 본 기업이 손해를 본 곳에 성과를 나눠야 한다는 취지다.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이 이익공유제의 법제화를 추진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익을 나누는 게 자본주의의 금기는 아니다. 기업은 주주에게 배당으로, 근로자에게는 성과급, 소비자에게는 가격 인하, 협력업체엔 생산 물량 증산 등으로 자연스레 성과를 배분하는 게 시장 메커니즘이다.

선진국 기업들도 부품조달 계약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성과공유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법제화한 나라는 없다. 경쟁을 통한 이윤 추구 등 자본주의 근간을 흔들 뿐 아니라 기업의 독립성·자율성 등 기본 경영 원리와도 상치하기 때문이다.

상생의 근간인 자발성과 호혜성이 결여된 이익공유는 반(反)시장적일 뿐 아니라 위험천만하기까지 하다. 정부가 강압하고 있는 이익공유는 사실상 징벌적 과징금의 위장술일 뿐이다. 대리점 갑질 사태로 인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나서자 영업이익 일부를 대리점과 공유하기로 한 남양유업 사례가 이를 역설적으로 대변한다. 남양유업의 ‘자발적 선택’으로 포장했지만 공정위는 이 같은 시정조치를 받아들여 사건을 종결하기로 했다.

자발성·호혜성이 없다면

부품 공급 등 생산 과정 일부에만 참여하는 협력업체가 사업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경영활동 전반의 모든 위험을 떠안는 대기업과 이익을 나누는 건 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이익을 공유한다면 손실까지 나누는 게 맞다. 중소기업 간에도 형평성 논란을 초래하게 된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업체만 혜택을 보는 데다 대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과의 거래를 꺼릴 가능성도 있다. 협력업체의 기여도를 산출할 수 있느냐, 해외 협력사와도 이익을 공유하느냐는 부차적인 논란거리다.

이익공유제가 이론적으로는 좋은 제도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자발적·호혜적이란 전제조건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제도의 시행 여부와 협력 모형을 민간 판단에 맡겨야 한다. 정부 역할은 상생 환경을 가로막는 규제를 풀고 불공정 관행의 장벽을 제거하는 데 둬야 한다. 정부가 강제하는 협력은 자칫 상생이 아니라 상극(相剋)만 북돋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생 모델은 오히려 산업 생태계를 훼손하고 주식회사 한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게 뻔하다.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