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巨與 정부가 이겨내야 할 '치명적 함정'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의 지난달 28일 오찬 대화 내용을 놓고 엇갈린 말이 나오는 게 석연치 않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의 주호영 원내대표는 회동을 마친 뒤 브리핑에서 “고용유연성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에 문 대통령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다음날 “대통령은 주 원내대표의 얘기를 들은 것일 뿐 동의한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윤 수석은 “고용유연성 강화는 해고를 쉽게 하겠다는 것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더 강화하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고용유연성은 기업과 노동계가 날카롭게 맞서 있는 이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기업들이 영업에 큰 타격을 받으면서 노사 간 신경전이 더 치열해졌다. 우리나라는 기업이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저(低)성과자도 쉽게 해고할 수 없을 만큼 고용보호 수준(고용경직성)이 높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한국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 강화’를 구조개혁 과제로 제시했고,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도 국별 경쟁력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직적인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개혁해야 한다”고 권고했을 정도다.

노동계는 생각이 다르다. 선진 외국들처럼 실업자를 떠받쳐줄 사회안전망이 탄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자리 보호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강력한 고용보호 장치를 요구하고 있다. 최대 노동조합조직인 민주노총은 정부가 추진하는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화’ 참여 조건으로 일체의 해고 금지와 고용 보장부터 논의할 것을 요구했다.

고용유연성을 놓고 대통령과 야당 원내대표 간 ‘동상이몽(同床異夢)’의 대화가 이뤄진 건 이 문제가 그만큼 복잡하고 정치적으로도 미묘한 것임을 일깨워준다. 궁금한 것은 문 대통령이 주 원내대표의 말을 ‘토 달지 않고’ 들은 의미가 무엇이냐다. 이날 회동에서 고용유연성 못지않게 논란이 큰 탈원전 문제가 거론됐을 때 대통령이 즉각 ‘기존방침을 고수할 것’임을 분명히 했던 것과 대비된다.

문 대통령 측근들이 그의 대표적인 강점으로 꼽는 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傾聽)한다’는 것이다. 정책 현안에 대한 자료를 무척 꼼꼼하게 챙겨 읽는다는 말도 한다. 요즘도 중요한 회의를 주재할 때는 새벽 1~2시까지 각종 보고서와 자료를 읽고 나서야 늦은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대통령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와 눈을 열고 있다는데 취임한 지 3년이 넘도록 논란 많은 정책들이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 강행되고 있는 건 미스터리다.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등 ‘기업은 물론 근로당사자들의 자율적 선택권까지 가로막고 시장경제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정책에 대해서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요지부동이다.

‘경청과 숙독(熟讀)’을 지도자의 대표적인 정치자산으로 삼는 정부에서 ‘불통’과 일방통행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까닭을 이제는 진지하게 돌아볼 때가 됐다. 미국 경영학자 스티븐 코비는 남의 말을 끝까지 듣더라도 ‘이해하려는 생각 없이 자기의 경험에 비춰 듣는 것’을 조직의 리더들이 피해야 할 ‘자서전적 경청(autobiographical listening)’으로 규정했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고 귀 기울이는 ‘공감적 경청(empathic listening)’을 해야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고,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가 고용유연성 문제를 거론하는 것조차 반대해 온 이유는 ‘사회안전망 미비(未備)’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각종 복지제도가 신설 및 강화돼 온 데 더해 고용보험 확대까지 추진되고 있는 터다. IMF와 WEF 등 제3자 국제기관들까지 ‘시급한 과제’로 고용유연성 개혁을 제기하고 있는 이유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고용분야뿐만이 아니다. 탈원전을 비롯해 국내외 전문가들의 보완 요구와 권고가 지속되는 정책과제들에 ‘공감적 경청’을 할 때가 됐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엊그제 문을 연 21대 국회에서 절대다수 의석까지 거머쥔 터다. 야당의 견제를 얼마든지 무력화할 수 있는 상황에서 듣는 시늉만 할 뿐인 ‘자서전적 경청’을 하는 것은 정권은 물론 나라 전체에 두고두고 큰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성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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