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중국의 '늑대외교'가 심상치 않다
‘특수부대 전랑(戰狼).’ 역대 아시아지역 최고 흥행을 기록한 중국 영화다. 특수부대 출신 주인공이 중동의 전장(戰場)에 뛰어들어 자국민을 구출해낸다는 줄거리의 ‘애국영화’다. 미국인이 이끄는 용병부대와 마주치는 족족 눕히고 때려 부순다는 설정에 중국인들이 열광했다. ‘중국판 람보(Wolf Warrior)’로 불리는 이 영화가 요즘 중국 외교의 상징어로 떠올랐다.

‘전랑외교’가 중국의 행동수칙이 됐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넘쳐난다. 프랑스 주재 대사는 “현지 언론들이 미국이 억지주장을 내놓을 때마다 추종 보도를 하며 거짓말을 짖어대고(howl) 있다”는 막말을 퍼부었고, 베네수엘라 주재 대사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중국 바이러스’로 부른 이 나라 국회의원들을 향해 “정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들에게 필요한 치료법은 마스크를 쓰고 입을 닥치는 것”이라는 험악한 성명을 발표했다.

호주는 훨씬 더 치욕적인 봉변을 겪고 있다. 호주 정부가 코로나19가 중국에서 기원했는지에 대한 국제 조사 필요성을 언급하자 호주산 소고기 수입에 빗장을 걸고, 연간 생산량의 절반을 중국에 수출하는 호주산 보리에는 70%가 넘는 반덤핑관세를 부과하는 실력행사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1일자에 ‘퀸즐랜드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Queensland)’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호주 동북부 퀸즐랜드주의 대학생들이 홍콩민주화 지지 시위를 벌인 이후 중국 총영사관으로부터 온갖 압박과 모멸을 당하고 있는데도 해당 대학은 물론 주(州)당국이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는 상황을 다룬 기사다.

주 경제의 상당 부분을 중국과의 교역에 의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등록 대학생의 20%도 중국 유학생일 정도로 중국의 존재감이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는 내용이다. 중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했던 홍콩의 ‘일국양제(1국가 2체제)’ 원칙을 깨뜨리고 지배권을 강화하는 ‘홍콩국가보안법’ 처리를 강행하기로 한 것은 ‘전랑외교’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갈수록 거칠어지는 중국의 외교 도발이 시진핑 정부가 외교부에 대한 공산당의 장악력을 한층 높인 이후 본격화되고 있다는 게 예사롭지 않다. 중국 최고지도자인 시진핑은 지난해 외교부를 사실상 지휘하는 공산당 책임자로 외교 경험이 전혀 없는 당내 이데올로기 전문가를 임명했다. 외교부 차관 출신이 맡아온 전례를 깨뜨린 인사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외교관들은 국제사회에서 중국 공산당의 영도력과 사회주의 체제를 공격하는 자들에게 단호하게 반격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놓았다.

국제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기축국가 호주를 각별하게 길들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또 다른 주요 미국 동맹국가인 한국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꼬투리 잡아 길들인 여세를 몰아 미국이 구축한 동맹의 ‘약한 고리’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미국이 중국의 속셈을 모를 리 없다. 중국 문제에 관한 한 공화당과 민주당이 똘똘 뭉쳐 “제대로 손봐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는 배경이다. 미국 정부가 최근 한국에 자국 중심의 경제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에 동참할 것을 제안하는 등 ‘문단속’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으로서는 간단하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자강(自彊)’이라는 외교 원칙을 돌아보며 중심을 제대로 잡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밀면 밀리는 만만한 나라’로 인식되는 일이 없도록 처신의 분별력을 높여야 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엊그제 기자회견을 통해 “코로나가 중국에서 세계로 확산된 게 사실이며, 일본은 기본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으로서 미국과 협력하겠다”고 분명히 한 것은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자위(自衛)를 위해 도입한 사드를 놓고 중국이 벌인 치졸한 보복 조치에 끌려다닌 것도 모자라 시진핑의 연내 방한에 혈안이 돼 있는 한국 정부와 비교된다. 이 시점에서 그를 불러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격랑이 예고된 외교 전선을 제대로 읽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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