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공급망 옮기려는 美
'EPN 동참' 압박받는 韓
새 흐름 잘 읽고 대응해야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美 '경제협력 네트워크' 구상…갈림길 선 한국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선언한 지 2개월이 넘었다. ‘BC(Before Corona)’ ‘AC(After Corona)’라는 용어가 나올 만큼 짧은 기간에 각 분야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변화는 세계화 퇴조와 이에 따른 세계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화의 퇴조 움직임은 피부로 느낄 만큼 뚜렷하다. 세계화 속도가 둔화된다는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에 이어 ‘탈세계화(deglobalization)’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로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면 상품과 자본의 이동까지 제한되기 때문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美 '경제협력 네트워크' 구상…갈림길 선 한국

동시에 자급자족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세계주의’보다 ‘보호주의’가 더 강화되는 가운데 ‘수출’보다 ‘내수’, ‘오프쇼어링’보다 ‘리쇼어링(혹은 니어쇼어링)’, ‘아웃소싱’보다 ‘인소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극우 세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앞으로 세계화의 퇴조 움직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화가 중시하는 ‘효율성(기업 차원에서는 이윤 극대화)’보다 안정성과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각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닥칠 대변화를 감안해 모든 경제정책을 수정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 추진될 경제정책에서 자급자족 성향이 중시된다면 세계화의 상징인 세계 공급망도 자국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각국은 새롭게 형성되는 세계 공급망에서 중심국이 되려는 노력도 함께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심국이 될수록 자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국민의 경제생활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는 세계 공급망의 개념을 따져보면 그 답이 나온다. 세계 공급망이란 ‘기업 간 무역’과 ‘기업 내 무역’으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 체계를 말한다. 이 개념에 충실한 개편안은 종전 세계 공급망의 중심국 기업 간 거래를 차단하고 본국으로 환류되는 기업 간 거래를 더 촉진하면 된다.

미국의 세계 공급망 재편 구상인 ‘경제협력 네트워크(EPN)’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세계 공급망 중심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화웨이 등 핵심 기업과 미국 기업의 모든 거래를 차단했다. 한국의 삼성전자 등과 같은 제3자 기업을 통한 거래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도 병행해 아예 고사시킨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개편되는 세계 공급망의 중심지를 미국으로 옮긴다는 목표다. 중국에 진출한 자국 기업을 미국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을 이른 시일 안에 마무리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생산비 등으로 미국으로 옮기기 힘든 기업은 인도와 같은 친(親)미국 성향 국가로 유도하는 니어쇼어링도 병행한다.

미국은 경제협력 네트워크 구상이 조기에 가시화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쏟아붓는다는 방침이다. 리쇼어링의 최대 장애 요인인 임금 등 생산비는 법인세를 대폭 인하해 완충시켜준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초에 35%에서 21%로 내린 법인세를 이번에는 15%로 한 단계 더 내리는 방침도 확정했다. 한국보다 무려 10%포인트나 낮은 수준이다.

미국 내 기업 환경의 최대 강점인 규제 완화도 더 확실하게 추진한다. ‘1 대 7’의 원칙에 따라 한 건을 불가피하게 규제하면 관련 규제를 일곱 건 철폐 혹은 완화해 주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기업에 환차익을 제공하는 내용도 신선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유지해온 달러 약세 방침을 철회하고 ‘지금은 강한 달러가 바람직하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롭게 형성될 세계 공급망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친중국 성향의 국가를 대상으로 경제협력 네트워크 구상에 참여하라는 압력도 가하고 있다. 한국이 대표적인 대상 국가다. 경제협력 네트워크 참가국이 많아질수록 중심지인 미국의 영향력이 높아져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팍스 아메리카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게 미국의 포석이다.

세계화와 수출로 대변되는 한국 경제는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 흐름을 잘 읽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새롭게 재편되는 세계 공급망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조기에 결정하고, 대외정책을 비롯한 모든 경제정책을 종합적으로 재점검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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