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세율에 공제조건도 지나치게 엄격
승계제도 개선해 기술·노하우 축적 지원해야
일본에서 가업승계를 위해 상속·증여세 유예 신청을 한 기업이 지난해 3815곳에 달한 반면 한국에선 이와 비슷한 가업상속공제 신청 기업이 62곳에 그쳤다는 한경 보도(5월 22일자 A1, 2면)다. 일본 정부가 중소기업 가업 승계를 장려하기 위해 상속·증여세를 전액 유예 또는 면제하는 ‘특례사업승계 제도’를 2018년 도입한 이래 신청 기업이 이전보다 10배가량 급증했다. 한국도 상속재산의 200억~500억원까지 세금을 공제해주는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지만 활용률이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국내에서 가업상속공제가 뿌리내리지 못한 것은 까다로운 이행조건 탓이다. 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2세 기업인이 7년간 업종과 자산을 변경해선 안 되고, 고용 인원도 물려받을 당시의 8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산업구조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너무 엄격한 기준이다.

이에 반해 일본의 가업승계특례 제도는 유연하면서도 파격적이다. 2세가 가업을 물려받을 때 일단 증여세와 상속세 납부가 전액 유예되고, 선대(先代) 경영자가 사망하면 증여세 납부가 면제된다. 가업을 계속 운영해 3세에게 물려주면 유예받았던 상속세도 최종 면제된다. 기업을 유지하는 한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런 차이로 인해 일본에선 중소기업의 가업승계가 활발한 반면 한국에선 중소기업들이 세금이 무서워 가업승계를 포기하고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평생 일군 기업을 팔고 해외로 이민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금 같은 여건에선 강소(强小)기업을 키우기 어렵다. 강소기업은 2, 3대에 걸친 가업승계로 기술과 노하우가 오랜 기간 축적돼야만 비로소 탄생할 수 있다.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육성하려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은 그런 기술과 노하우 축적이 더욱 중요하다. 글로벌 소부장 강소기업이 일본에 유독 많은 것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가업승계 장수기업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가업승계지원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할 때다. 소부장 강소기업을 키워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무엇보다 까다롭고 비현실적인 가업상속공제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 기업 형태만 유지한다면 업종과 자산의 전환을 허용해 산업구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다.

차제에 세계 최고인 상속·증여세율을 낮추는 것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상속·증여 재산의 50%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현실에선 가업 승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싱가포르 같은 나라가 왜 상속·증여세를 없앴고,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들이 앞다퉈 상속·증여세 면제범위를 확대하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일이다. 일본의 강소기업, 독일의 히든챔피언을 부러워만 하지 말고 과감하게 가업 상속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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