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미국이 마이너스 금리면…

실비오 게젤(1862~1930)이라는 독일 재야 경제학자는 ‘이자 때문에 성장이 저해된다’고 봤다. 사업가이자 아나키스트였던 그는 적정 금리를 -5.2%로 제시하기도 했다. 비웃음을 샀던 그의 이론을 재평가한 사람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였다. 케인스는 “마르크스보다 게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시대가 올 것”이라며 “이자는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하나의 과도기적 단계”라고 했다.

게젤이 말한 마이너스 금리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마이너스 금리는 2012년 비(非)유로존 국가인 덴마크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유로존 19개국(ECB·2014년), 스위스·스웨덴(2015년) 일본(2016년)이 뒤따랐다. 도입 목적은 대체로 디플레 탈출이었으니 게젤의 승리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당황스런 상황의 전개에서 정통 경제학 신봉자들의 희망은 미국 달러화였다. 하지만 그 희망도 강력한 적수를 만났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른 국가들처럼 미국도 마이너스 금리라는 ‘선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미 중앙은행(Fed)을 압박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즉각 반발했다. “더 좋은 정책수단이 많다”며 “마이너스 금리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잘라말했다.

하지만 시장은 트럼프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두 사람의 충돌이 불거진 13일(현지시간) 미국 국채·독일 분트채 10년물 수익률은 일제히 하락했다. 극심한 경기 침체 상태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을 잘 아는 트럼프의 압박에 베팅한 셈이다.

파월 의장은 부인했지만 Fed는 마이너스 금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전임 의장인 벤 버냉키와 재닛 옐런은 “향후 위기에 대비해 Fed의 무기고에 마이너스 금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달러의 마이너스 금리 논란은 코로나 이후 세계의 변화가 예상보다 훨씬 크고 깊을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 가뜩이나 좌파진영은 마이너스 금리를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한계의 누적이자 종말의 신호”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중국 금융당국이 미 국채 투매 카드를 슬쩍슬쩍 내비친다는 점이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결국 미국이 주도하게 될 최종 선택지에는 자발적인 모라토리엄(지급유예) 선언도 포함돼 있다는 음모론적 시각도 나온다. 뒷날 21세기의 전반기는 ‘뉴노멀이 세워진 시대’로 기록될 것 같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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