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꿈을 꾼 것만 같다
마치 꿈을 꾼 것만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갇혀 살던 몇 개월. 꿈을 꾸더라도 두 번의 길고 긴 꿈을 꾼 것만 같다. 첫 번째 꿈은 코로나19 이전의 날들이 영판 꿈만 같고, 코로나19로 묶여서 살던 몇 달의 날들이 또다시 꿈만 같다. 두 개의 삶이 다 같이 현실이 아닌 듯한 느낌이다.

물 흐르듯 흘러가던 삶이 어느 순간 딱 멈춰 버렸다. 마치 소리가 잘 나던 오디오가 멈춰 버린 모양새다. 막무가내로 일상적인 삶이 그리웠다. 소소한 삶, 그저 그런 삶, 그 삶 속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쉽게 돌아가 주지 않았다. 다만 애달팠고, 우리는 평범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 삶이었나를 새삼 알아야만 했다.

문학 강연과 외부 일정이 전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바람에 집에서만 지내는 날들이 길어졌다. 자연스레 풀꽃문학관에 자주 나갔고 그에 따라 꽃밭을 돌보며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그 바람에 꽃나무들과 더욱 가까워졌고 뜨락을 서성이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모처럼 봄 하늘이 푸르고도 넓었다. 흰 구름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아, 얼마 만에 만난 봄 하늘이고 봄 하늘의 흰 구름인가!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때, 문학관 뒷산에 바람 소리가 들렸다. 키 큰 상수리나무에 새순이 돋아 더 두터워지고 가까워진 바람 소리다. 바람 소리는 바닷물 소리와 많이 닮아 있었다.

집에 머물 때는 유튜브를 자주 보았는데, 거기서 손열음이란 이름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새롭게 알게 됐다. 30대 중반의 젊은 여성인데 얼마나 피아노 연주가 특별한지 황홀할 지경이었다. 그녀의 연주는 온몸으로 하는 연주로 테크닉이 매우 화려하고 열정적이었으며 나에게 많은 에너지를 제공했다. 나는 그녀의 연주를 보면서 코로나 우울증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이것은 엉뚱한 한 소득이라고 하겠다.

책 출간 문제로 출판사 대표 한 분을 만났다. 지난봄에는 목련꽃이 피고 지는 그 전 과정을 찬찬히 보았노란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새삼 깨달았고 인간의 오만함을 뼈저리게 반성했단다. 바로 이것이다. 인간의 무릇 좋은 것들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없다. 고난의 통과의례를 거쳐 우리에게 비로소 당도한다.

코로나19 또한 우리에게 그저 공짜로 지나간 것이 아니다. 무언가 많은 시사점을 주면서 우리 곁을 통과한 것이다. 우리가 현명하다면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가능하다면 이전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 나보다는 타인을 먼저 배려하면서 살아야 하고, 작은 것들을 아끼며 살아야 하고, 특히 생명의 소중함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한다.

택시나 버스를 탈 때도 기사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내내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던 그들의 말씨가 살가워지고 친절해졌다. 그러니 이편에서도 공손하게 응대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손님이 줄어들어 생긴 일시적인 변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작은 일 하나에서도 우리는 세심하게 주변을 살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