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일본이 방역에 실패한 이유
“쓰키시마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그늘막 텐트가 설치돼 있다는 신고가 있어서….”

일본 경찰이 우리 가족을 찾아온 건 지난달 7일 아베 신조 총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사태를 선언하고 며칠 지났을 때였다. 도쿄 집 앞의 하루미임해공원에는 주말마다 텐트를 쳐놓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지난 3월 도쿄에 부임한 직후 이들의 태평스러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막상 살아보니 공원 말고는 갈 데가 마땅치 않았다. 탁 트인 공원은 몇 안 되는 안전지대로 보였다. 아베 총리 역시 코로나19 사태에도 공원은 생활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시설로 인정한 터다. 그런 곳에 경찰이 닥친 것이다. “텐트를 치면 안 되나요?”라고 묻자 젊은 경찰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절대 아닙니다. 다만 외출 자제 요청에 협력을 부탁드리려고요.” “아, 텐트 치지 말란 말씀이군요.” “아닙니다. 저희가 텐트를 치지 말라고는 절대 말씀 못 드립니다.”

경찰조차 방역수칙 얼버무려

공원까지 일부러 찾아온 걸 보면 분명 텐트를 걷어 달라는 요청인데 그건 절대 아니라니. 갈피를 못 잡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텐트를 걷기 시작했다. 경찰과의 대화에서 일본인만 알아듣는 대목이 있었던 모양이다.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의 ‘분위기 파악’과 비슷한 ‘공기를 읽는 능력’이 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분위기 파악을 못 하면 놀림감이 될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선 ‘공기를 읽지 못하면’ 심각한 왕따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또 다가왔을 때 다시 물어봤다. “외국인이라 도저히 모르겠는데 이럴 때 보통의 일본인은 어떻게 대처하느냐”고. 경찰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끝내 ‘이럴 땐 이렇게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 후로도 공원에 텐트가 늘 때마다 경찰이 어김없이 나타나는 패턴은 반복되고 있다. 일본인이나 외국인들의 텐트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경찰 역시 “절대 텐트를 치지 말라는 게 아니다”고 발뺌한다. 코로나19 검사를 많이 시행하는 주중에 확진자가 늘었다가 주말이면 감소하기를 반복하는 일본의 코로나19 상황을 보는 것 같다.

두루뭉술한 조치가 한계 드러내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대응도 이런 식이다. 아베 총리를 포함해 누구도 ‘이건 이렇게 하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지 않는다. 긴급사태 선언에도 휴업과 외출 자제에 대해 ‘협력 요청’만 했을 뿐이다. 정부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으면 ‘협력 요청→요청→지시’ 순으로 강화한다는데 어떤 단계도 강제성(벌칙)이 없다. TV 해설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단계별 차이가 뭔가요?”라고 묻자 해설자는 “받아들이는 쪽에서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국가가 법에 근거해 내리는 행정조치조차 알아서 ‘경중’을 따지라니.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이 미묘한 차이를 귀신같이 분간한다. 긴급사태를 선언할 때 ‘외출 자제 요청’이라고 강조했던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도 어느샌가 ‘외출 제한’으로 바뀌었다. 이런 일본 특유의 문화야말로 외출금지 같은 극단적인 조치 없이도 감염자 수를 줄인 비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한 나라가 된 것 역시 이 때문일 것이다.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는 대신 ‘공기를 읽는 능력’으로 바이러스를 잡으려 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오늘도 집 앞 공원에서는 젊은 경찰들이 “절대 텐트를 걷으라는 게 아니다”며 텐트를 단속했다. 일본 코로나19 환자 수는 2만 명을 향해 가고 있다.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