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생활 속 '그린 뉴딜'
몇 년 전 서울시의원 한 분이 서울시 공공임대주택 입주가구 중 약 3000가구가 겨울철 6개월 동안 난방비를 한 푼도 지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가난한 입주민들이 월 5만원 정도 되는 난방비를 아끼려고 전기장판이나 전열기에 의존해 겨울을 났던 것이다. 당시 공공임대주택 관리기관의 책임자로서 많이 부끄러웠다.

한국의 전기요금이 세계에서 낮은 편인데도, 우리 주변에는 에너지 비용을 아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는 가구가 여전히 많다. 겨울 동안 창문에 뽁뽁이를 붙이거나 문틈을 수건으로 감싼 집을 흔히 볼 수 있다. 빈부 차이는 겨울옷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나듯이 겨울철에 소득에 비해 에너지 비용이 과도한 가구들의 고통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저소득층 에너지복지 프로그램은 우리나라보다 미국에서 더 적극적이다. 주택단열프로그램(WAP)사업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돼 빈곤가구의 에너지 비용 절감에 크게 기여했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버니 샌더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공공주택그린뉴딜법’을 발의하고 기존 공공임대주택에 획기적인 투자를 제안했다. 16조달러 규모의 ‘그린 뉴딜’을 대선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우리는 어떤가? 주택단열프로그램은 환경단체를 통해 시민운동으로 추진됐고, 한국에너지재단을 통해 저소득층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이 연간 700억원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노후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국가 지원은 연간 550억원에 불과하다. 재원이 공공임대주택의 건설과 공급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상과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뉴딜사업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디지털 뉴딜, 사회간접자본(SOC) 뉴딜, 사회적 뉴딜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정부도 최근 디지털 뉴딜에 역점을 둔 한국판 뉴딜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현재의 위기가 효율성과 경쟁력에 치중한 사회경제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위기극복을 위한 뉴딜은 근본적인 전환을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우리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분야는 기후변화 대응이다. 유럽연합(EU)이 파리협정 이행을 위한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1990년 기준으로 40%를 제출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증가율 기준인 BAU(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치)를 적용해 37% 감축 목표를 제출했다.

모든 주택과 건축물을 ‘에너지 제로’ 빌딩으로 전환한다면 우리도 탄소배출량 감축목표를 상향 조정할 수 있다. 그린뉴딜 사업으로 에너지 전환과 그린 리모델링에 획기적인 투자가 이뤄진다면 일자리 창출과 형평성 문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 한 가구에 200여만원을 지원했던 공공임대주택의 에너지 효율 개선사업 덕분에 노인분들이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다고 너무 고마워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