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베르디와 나부코의 고통과 자기성찰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는 26세의 나이에 성공적으로 데뷔했지만, 이듬해 사랑하는 딸과 아들을 연이어 잃는 슬픔을 겪게 된다. 게다가 아내까지 뇌염으로 사망해 베르디의 낙심은 고통 이상의 것이었다. 준비하던 두 번째 작품마저 실패하자 베르디는 다시는 작곡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라 스칼라의 극장장 메렐리는 젊은 작곡가를 불행 속에서 그대로 끝나게 두지 않았다. 새로운 작품을 시도해 볼 것을 권유하며 그에게 오페라 대본을 건넸는데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베르디는 대본 따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끊임없는 메렐리의 권유와 설득을 받던 어느 날, 문득 대본을 읽어본 베르디는 그 내용을 자신의 마음에 담는다. 환난 중에 있지만 민족의식을 잃지 않고 자유를 갈망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예들의 마음을 대본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결국 베르디의 세 번째 작품이 탄생하게 되고, 이 작품은 그를 이탈리아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만든 초석이 됐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유명한 ‘나부코’라는 작품이 그것이다.

나부코는 기원전 약 600년께 실존한 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를 일컫는 이탈리아식 줄인 이름으로, 구약 성서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으로 칭하기도 한다. 오페라 나부코는 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션이다. 바빌론의 왕 나부코는 예루살렘에 인질로 잡혀간 자신의 둘째 딸을 구출하며 히브리인들을 정복하고 포로로 삼는다. 세상 권세를 가진 나부코 왕은 스스로를 왕이 아니라 신으로 칭하며 자신을 숭배하라고 명령한다. 이때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고 나부코는 쓰러져 정신이 나간다. 구약 성서에서는 나부코, 즉 느부갓네살 왕이 정신병에 걸려 7년간 짐승처럼 풀을 뜯고 살았다고 묘사하는데 이 부분과 상황이 맞닿아 있다.

왕위를 찬탈하려던 큰딸은 아버지 나부코를 가두고 히브리인을 처형하려고 한다. 이후 나오는 “내 마음아 황금빛 날개를 달고 언덕 위로 날아가라”로 시작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고향을 그리는 히브리인들의 희망의 마음을 노래한다. 이 곡은 당시 이탈리아 관객들의 마음을 울렸고, 지금까지 이탈리아의 국민 합창곡으로 불리고 있다.

오페라에서는 이후 나부코 왕이 정신을 회복한 뒤 자신의 교만함과 인간으로서 얼마나 나약했는지를 깨닫고 신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왕위를 되찾으며 히브리 노예들에 대한 처형을 중지하고 그들을 해방한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영화는 인간의 미약함을 쉽게 잊게 한다. 이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고통의 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7년을 고행한 나부코 왕의 시간이 그랬고,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려던 때에 베르디가 겪은 가족을 모두 잃는 아픔도 같은 상황이다. 힘든 시기는 인간이 겸허하게 자기 성찰을 하게 만든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여러 어려운 상황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처럼 스스로를 되짚는, 회복과 더욱 나은 미래를 위한 시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